판서·감사·참판 등 고관대작 밤 유흥문화 담아
다산 정약용이 쓴 자서전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 무렵(1794년) 내각학사 정동준(鄭東浚)이 병이 났다는 핑계로 집에서 지내며 음흉하게 조정의 권한을 잡아보려고 사방의 뇌물을 긁어모으고 귀신(貴臣)과 명경(名卿)들이 밤마다 백화당(百花堂)에 모여 잔치를 베풀고 있자 안팎으로 눈을 찌푸리게 되었다."
여기에 언급된 정동준(1753~1795)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인물로 화성 성역 추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등 막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다가 1795년 1월 노론 벽파의 공격으로 몰락해 자살한 인물이다. 그리고 '백화당'(百花堂)은 정조가 회현동에 지어 정동준에게 하사한 건물로, '백화당가'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1871)에 나온다.
다산과 이유원이 증언해준 이 정동준의 '백화당 잔치'와 '백화당가'라는 작품은 그 일부가 1962년에 처음 소개되고 그 후 몇몇 이본(異本)의 존재가 알려졌음에도 연구자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근래 영남대도서관 도남문고 책 중 귀중도서로 소개되고, 작품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백화당가'와 '속백화당가'는 총 22면으로 된 작은 책자(17.7×14.5cm)로 되어 있는데, 끝에 '정동준 나라의 총(寵)할 적에 희철배가 이 글을 지어내었도다'라는 글이 있어 1790년대 전반에 '희철배'가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희철배'는 속편인 '속백화당가'의 "수청방에 잡좌하여/ 희철배와 짝을 삼아/ 언소희락 자약한다"라는 대목으로 보아, 이 잔치를 어떤 식으로든 지켜볼 만한 인물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둘 다 밤에 종들을 시켜 사람들을 불러 노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백화당가'는 양금(洋琴)치고 노래하는 모습에 이어 휘몰이 팔뚝춤, 택견, 씨름, 대무(對舞), 투전(投錢) 등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속백화당가' 역시 노는 것은 비슷하나 그 모인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판서 정창순, 판서 서유방, 판서 홍양호, 판서 서형수, 평안감사 김사묵, 충청감사 이형원, 참판 심환지 등등 고위 관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정조 당시 실존했던 인물들, 그것도 정치적으로 영화를 누리는 거물들을 포함한 다수를 실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어쨌든 대단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아울러 이런 인물들의 노는 행태에 대한 서술자의 시각이 다소 비판적인데, "홍판서 양호씨는/ 술부공명 기망이라/ 문인 기상 어디 두고/ 아유지태 저러한고"와 같은 것은 신랄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충격적인 작품의 창작 경위는 미상이나, 이 작품은 그 배경의 정치적 맥락이나 고관대작들의 유흥 문화, 그리고 문학적 기법 측면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인 것이다.
현재 회현동에는 '동래정씨 회현방 옛터' 안내판과 500년이 넘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한경지략'(漢京識略·1890)의 '회현동' 항에서 '문익공 정광필이 옛날 살던 집이 있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 집에 은행나무가 있는데…'라고 한 바로 그 은행나무로 보인다.
서인석 전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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