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즐겨 했던 '오징어게임'이 세계인이 열광하는 핫 키워드로 급부상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한국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계층 간 갈등을 잘 표현해 영화 '기생충'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라는 평도 줄을 잇는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소품인 초록색 운동복과, 달고나 만들기 세트 등이 아마존 등에서 불티나게 팔릴 정도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이 증명해 보인 한국 콘텐츠의 저력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가장 먼저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어릴 적 동심 가득한 추억의 장면들을 피비린내 진동하는 모습으로 바꿔 놨다는 점이다. 국민놀이의 추억에 없어도 될 붉은 피가 덧칠돼 버렸다.
이건 한국적 감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드라마적 장치라 치자. 그보다 더 불편했던 건 인간을 돈을 위해 남을 짓밟아 죽일 수 있는 철저하게 뒤틀린 본성의 존재들로 그렸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여성, 노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까지 더해져 보는 이의 불편함을 더욱 자극한다.
물론 '데스 서바이벌' 장르 자체가 게임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설정을 통해 무한 경쟁에 내몰린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보려는 설정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철학적 논쟁, 수많은 예술 작품, 학문적 실험을 통해 극단적 상황에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다만 그 결과는 데스 서바이벌과 사뭇 달랐다. 그중 행동경제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
독일 쾰른 대학에서는 A라는 사람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누도록 했다. 이때 B가 그 금액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나눠 가질 수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양쪽 다 단 1원도 가질 수 없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A는 최소한의 금액을 제시할 테고, B는 얼마든 간에 없던 돈이 생기니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합리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제안자 역할을 한 A는 평균 37%의 몫을 B에게 건네주는 제안을 했고, 가장 많은 이들이 공평하게 절반(50%)을 건네고자 했다. 반면 B의 경우 제안된 금액이 30%를 넘지 않으면 아예 제안을 거부하면서 '평등'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이를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한다.
미국 한 대학에서 20달러를 주고 A가 18달러, B가 2달러를 주는 경우와 두 사람이 똑같이 10달러씩 나눠 가지는 경우를 두고 선택하게 했을 경우 무려 76%의 참가자가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방식을 택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라는 책에서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선한 본성'에 압도되어 왔다"고 강조했다. 전쟁터에서 총알을 넣지 않은 총을 들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어린이와 여성들을 먼저 탈출시켰다.
결국 역사적으로도 실험을 통해서도 인간은 무한 이기적 존재가 아니며, 더 나아가 정의와 공평에 대한 생각이 일정 부분 유전자 속에 각인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성을 단순화시킨 오징어게임이 내내 불편했던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서사가 인간에 대한 냉소를 더 강화한다는 점이다. 브레흐만은 "인간이 악하다는 부정적인 믿음이 이기적인 사회 구성원을 만든다"고 했다. '남들도 악하게 행동하니 나도 그래도 괜찮겠지'라는 심리적 면죄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과연 오징어게임의 흥행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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