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
나에게는 명절에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는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에나 고향인 대구로 내려온다. 대구를 벗어나지 않은 나와 달리 친구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케이스이다.
종종 대구 본가에 들르던 친구였지만 결혼을 하고나서는 더욱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연락이 끊어지나 했지만 이게 웬걸, 요즘엔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이면 꼭 짬을 내어 만나는 것이 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만나기 어려워지니 더 애틋해진 걸까"하고 서로 웃고는 한다.
지난 추석에도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운 좋게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소소한 고민을 나누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함께 시간을 보냈던 대학생활이 화제에 올랐다. 대학시절 우리는 여섯 명이 한 무리가 되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웃고 울고 신나게 떠들어대곤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니 나머지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지낸대?"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도 연락 안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했다. 나도 연락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라 대학생활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들의 근황은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싸우고 절교를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연락이 뜸해지고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생각해보면 한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동료들이 서서히 멀어지는 일은 살면서 흔하게 겪는 일이다. 졸업이나 이사, 이직으로 환경이 바뀌어서일 수도 있고, 상황이 달라지다보니 생기는 마음의 거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내가 좀 더 노력하지 않아서 친구가 없나 하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이런 기분을 털어놓았더니 친구는 뜬금없이 "그럴 땐 버스에 탔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친구는 자기도 어디선가 본 글이지만 도움이 되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와 동료들은 같은 버스에 탄 승객과 같다고 했다. 한 버스에 타고 있을 때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친밀한 관계이지만, 버스는 정류장이 있어 누군가는 타고 누군가는 내리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람이 타기도 하고 친한 사람이 내리기도 한다. 아무도 안 내릴 때도 있고 가는 길이 같으면 한 정류장에서 여러 명이 함께 내릴 때도 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버스정류장을 지나면서 마주하는 승객들의 얼굴은 점점 달라져간다. 내가 내려야할 정류장이 다가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헤어지면 된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있는 건가"라는 내 질문에 친구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마음이 맞아서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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