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읽는데 실패한 TK 정치권, 이대로는 안 된다…최우선 과제는?

입력 2021-06-13 16:38:41 수정 2021-06-13 20:11:34

[포스트 전대, TK 혁신 시리즈](상) 이러려고 우리가 몰표줬나? TK 정치력 이대로 안돼
새 리더십 만들어진 국민의힘…지역민 생존 위해 TK정치권도 대각성 필요

지난해 11월 대구시청에서 열린 국민의힘-대구경북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 매일신문DB
지난해 11월 대구시청에서 열린 국민의힘-대구경북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 매일신문DB
국민의힘 이준석 새 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새 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마무리 된 제1야당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서른여섯 살의 원외 인사가 당수(黨首)로 뽑히자 보수진영은 물론 정치권과 한국사회 전반이 변화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보수의 심장을 자임해 온 대구경북(TK)도 충격에 휩싸였다.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고 스스로 껍질을 깨는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지역 정치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TK 정치권 중진을 향해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수락산과 북한산, 관악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산에 도전하는 후배들 마음을 이해 못한다'는 식의 수도권 정치신예의 공세에 TK 중진은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지도 못한 채 결국 무릎을 꿇었다.

당의 최대주주임에도 정작 전당대회에서는 들러리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민들의 압도적 성원을 얻어 국회로 간 TK 정치권이 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굳건한 정치적 위상을 확보해야 하는데도, 번번이 약골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매일신문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지역 정치권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지난 2007년 8월 14일 오후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왼쪽부터), 홍준표, 원희룡, 이명박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입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난 2007년 8월 14일 오후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왼쪽부터), 홍준표, 원희룡, 이명박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입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이준석 대표를 탄생시킨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국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중·장년이 주도해 온 정치무대에 2030세대가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그동안 개혁·진보진영에 후한 점수를 주던 2030 젊은이들이 보수정당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판' 자체가 흔들리는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서 보듯이 시대를 읽는데 실패한 TK 정치권의 대각성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1차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 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1차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 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TK 정치권, 전당대회서 잇따른 수모

대구경북(TK)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보수의 '본류'이자 '심장'을 자처해 왔지만, 막상 전당대회에서 얻은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대구의 정치1번지 수성갑이 지역구인 중진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이번 당권경쟁에서 14.02%(3위)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 또 4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2부 리그'에서도 지역 출신 정치인은 겨우 1명(김재원 전 의원)이 3위(6만2천487표, 15.02%)로 지도부에 입성해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 27만6천여명 가운데 30%가 넘는 8만6천여명이 대구경북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 83명 가운데 24명(28.9%)이 지역에 포진해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참담한 성적표다.

지역 한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TK 출신 후보들이 이른바 '개인기'를 통해 지지세를 확장하기는커녕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가 어느 곳보다 강한 고향 당원들의 지지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며 "보수정당 텃밭 정치인들의 빈약한 정치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역 정치인들의 지리멸렬한 모습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2019년 2월 치러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도 대구경북 정치권은 최고위원 1명밖에 배출하지 못하는 민망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시 대표 경선에는 지역 출신 도전자가 없었고, 4명의 최고위원을 뽑는 경선에 2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도전했다가 턱걸이로 1명이 당선됐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신임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태 청년최고위원, 배현진, 조수진 최고위원, 이준석 당대표, 김재원 최고위원, 정미경 최고위원 당선자. 연합뉴스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신임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태 청년최고위원, 배현진, 조수진 최고위원, 이준석 당대표, 김재원 최고위원, 정미경 최고위원 당선자. 연합뉴스

◆대통령 3명 배출한 TK 맞나?

정치전문가들은 보수진영에서조차 TK 정치권의 영향력이 한없이 쪼그라든 이유에 대해 '그동안 투자가 없었다'는 진단을 내린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고향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대권을 거머쥐었지만, 정치적 기반이 TK가 아니었던 탓에 지역 정치권이 동반성장하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달성군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성공한 서울시장'이었다"며 "고향에서 밀어올린 대통령이 지역 정치권과는 겉도는 결과를 낳았고, 대구경북 정치권의 쇠락이 가속화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지역민들의 묻지마 식 보수정당 지지도 지역 정치권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공천이 당선'이란 공식이 작동하면서 대구경북은 보수정당의 당권(공천권)을 잡은 인사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곳이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인물보다는 계파 수장의 명령에 고분고분한 화려한 스펙의 정치 신인들이 대거 발탁되면서 지역 정치권 특유의 '통 큰 정치'도 종적을 감췄다.

국민의힘 경북도당 관계자는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다 보니 지역 정치인들이 야무진 의정활동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며 정치적으로 성장하려 하기보다 비가 내리는 구름(공천권자)만 좇아다니는 못난이로 전락하고 있다"며 "당내 계파 간 공천학살의 주 무대가 대구경북이었던 점도 지역 정치권이 지리멸렬하게 된 원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새 대표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새 대표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TK도 제2의 이준석 키워내야

지역 정치권에선 이제라도 고향이 대구경북이 아니라 정치적 자산이 대구경북에 있는 싹 수 있는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관대작'을 지낸 '고향 까마귀'가 말년을 향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 문제를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해법으로 지역민의 행복지수를 높인 인사들의 정치적 성장관리 과정의 하나로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테면 ▷의료시설이 부족한 경북 북부지역에서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해 온 명망가 ▷지역 정보통신(IT)업계의 애환을 보듬어온 큰 형님뻘 현장 기업인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사건의 집단소송을 승리로 이끈 법조인 ▷포항과 구미 등 지역의 산업단지에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킨 활동가 ▷자타공인 낙동강 생태전문가 등 지역에 정치적 자산이 있는 유망주 등이 국회에서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정책입안 능력을 키우고 전국적 인지도를 높여가며 성장해야 지역 정치권에도 진정한 미래가 있다는 훈수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반복되는 중앙당의 공천 전횡에 분개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지역이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며 "지역의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치권이 공히 공감할 수 있는 정치예비군 인재풀을 마련하고 중앙당에 공천을 압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일꾼 가운데 임기 중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인사에게 차기 총선 출마 기회를 제공하는 관행을 정립해 지역 정치권의 생기를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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