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블러드 / 임태운 지음 / 시공사 펴냄
지구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가던, 선택된 인간들의 욕망 대결
좀비 퇴치물로 보기 힘들어… 무협지의 요소 갖춘 우주무협활극
'모세가 두 아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출애굽기 18:3~4)
오염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 약속의 땅 카난으로 가는 여정에 멈춘 게르솜을 엘리에셀이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의 이름을 딴 방주는 40년 간격을 두고 카난으로 발진한 터였다.
엘리에셀에 탑승해있던 백혈인간, 천이도 외 2명이 냉동수면 상태에서 깬다. 이들을 깨운 건 엘리에셀을 통제하는 AI(인공지능)다. 게르솜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보라 하명한다. 카난에서 뿌리내릴 지구의 온갖 자재들이 게르솜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게르솜은 지구에서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 방주였다. 신분과 재력은 탑승권을 보장하지 못했다. 강한 면역력이나 신체조건, 뛰어난 두뇌가 탑승 조건이었다. 후세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으로 모자라 공감 능력이 결여됐거나 공격적인 성정이면 또 탑승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4만4천 명이 게르솜에 올랐다.

문득 2019년 우리 문단을 강타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作)' 속 작품들이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임태운 작가는 무협을 넣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주무협활극이다.
내공 수련은 첨단기술의 집합체 우주공간에서 온당치 못하다. SF판타지에 운기조식은 거추장스럽다. 기술과 내공은 동일 개념이다. 나노봇이 주입된 피를 갈아넣으면 된다. '백혈인간'의 탄생이다. 우주의 기압을 견디고 스피드, 파워까지 겸비했다. 소설 제목 '화이트블러드'의 출처다.
그러나 무적의 고수가 멋대로 날뛰면 강호의 균형은 깨지기 마련. AI가 심판자, 중재자로 나선다. AI는 독심술까지 갖췄다. 기기와 연결된 모든 걸 조정할 수 있다. AI는 나노봇을 손오공의 머리띠, 긴고아(緊箍兒)와 같은 기능으로 활용한다. 여차하면 터트려버릴 수도 있다. 신적인 존재다.
명령을 받은 백혈인간 천이도 일행은 게르솜에서 초거대역병, 특수광견병 Z19가 번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역병 전파 원인이 황당하다. 인간의 혀가 문제였다.
방주 게르솜이 카난으로 발진한 지 140년 후. 탑승자들은 설계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증상을 보인다. 무미건조한 식생활 탓이었다. 그들은 냉동수면 중 고기를 뜯어 먹는 꿈을 꿨다. 부동액을 갈아넣는 20년 주기마다 탑승자들은 우주선을 뒤져가며 고기를 찾아다닌다.
동족취식의 카니발리즘 창궐을 우려한 게르솜 수뇌부는 동물 배양실을 설치한다. 동물 배양과 함께 콜레라가 발생한다. SF판타지 스릴러가 대개 그러하듯 콜레라는 변이 좀비 바이러스로 이어졌다.

그러나 좀비는 한낱 떼거지 조연에 불과했다. 진짜 문제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이 아니었다. 모든 사건의 확장에 인간적 불신과 욕망이 분출된다. 욕망들의 각축전은 비행파와 수면파 간 내전으로 나타난다. 게르솜이 멈춰선 까닭이었다. 이후 전개될 반전과 스릴감은 읽어보는 자의 몫이다.
'화이트블러드'는 무협지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어느 쪽이 선인지 구분이 모호한 정파와 사파가 맞서는 구도, 케케묵은 구원(舊怨)까지. 결투 장면 묘사도 무협지에 뒤지지 않는다. 같은 제목의 웹툰, 영화가 있으나 엄연히 다르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결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359쪽. 1만4천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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