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지'라는 말이 지금도 잘 쓰이는지 모르겠다. 당근이지는 한때 '당연하지' 대신에 많이 쓰이던 속어. PC통신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 것 같다. 한창 그런 말들이 생산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니까. 짧고 굵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그런 유형의 말들은 외계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우리 세대도 저물어 갈 모양이다.
당근이지는 모 일간지를 홍보하는 광고에도 나왔다. 아들 오이가 '엄마, 나 오이 맞아요?'라고 물으니까 엄마 오이가 '당근이지'라고 대답, 아들 오이가 '나는 당근이 싫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울면서 가출했다는 우스개를 빌렸다.
2020년은 정말 '당연'이 '당근'이 아니었던 한 해였다. 세상일에는 당연한 게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장작을 때지 않았는데 연기를 뿜는 굴뚝은 없다는 말이겠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수많은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사람을 만나서 서로 손을 맞잡고 흔들어대던 악수마저도 주먹 인사가 대체해버렸다. 아예 모이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만 먹으면 약속을 잡고 삼삼오오 밥을 먹고 술잔을 나누던 당연함. 아침이 채 밝아오기도 전에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쓸쓸함과 짠함도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교실에서 받는 수업도 당연하지 않다. 언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될지 모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등을 토닥이던 '당연'의 시간이 지금은 없다. 대면(對面)이 이렇게 간절했던 적 있었던가. 있어야 할 것들이 있지 못하는 불길함이 우리 주위를 휘감고 있다.
멀쩡하게 출근했던 가족 중 한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고, 웃으며 학교 갔던 아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게 나의 일이 된다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당연한 일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당연을 당연으로 여기면서 사는 게 얼마나 많은 타인의 배려 덕분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아니, 당연을 당연한 것으로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더러워진 물은 알아서 빠져나가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는 당연함.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단추 하나만 누르면 깨끗하게 치워지는 당연함.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마법처럼 집 앞으로 뭐든 가져다주는 당연함. 손만 들면 택시가 와 멈추고 술을 마시고도 나 대신 차를 운전해서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당연함.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당연'이 '당연'이 아니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 서늘한 바람 / 그 바람은 좋은 바람 / 고마운 바람 /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 시원한 바람 /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 저 혼자서 나룻배를 저어 간대요. –동요 '산바람 강바람'-
바람이 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는 싫다. 그렇다고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일도 지금은 과하지 싶다. 누구 말처럼 세상일 당연한 것 없다는 자각을 하고 산다면 세상이 좀 더 빨리 맑아질까. 아, 대폿집에서 마시던 막걸리 한잔이 몹시 고프다.
김성민 시인· 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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