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쿠테타 하면 대개 1979년의 12·12 군사 쿠테타를 떠올리지만, 1884년 12월에도 개화파가 중심이 된 쿠테타가 일어났다. 갑신정변이 그것이다.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현재의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총국에서는 개국을 축하하는 낙성식(落成式)이 열리고 있었다. 우정총국은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우편 업무를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초대 총판(總辦)은 개화파 홍영식이었다.
'고종실록'은 "이날 밤 우정국에서 낙성식 연회를 가졌는데 총판 홍영식이 주관하였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에 담장 밖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때 민영익도 연회에 참가하였다가 불을 끄려고 먼저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는데, 밖에 여러 명의 흉도들이 칼을 휘두르자 나아가 맞받아치다가 민영익이 칼을 맞고 대청 위에 돌아와서 쓰러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흩어지자 김옥균·홍영식·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궐내(闕內)로 들어가 곧바로 침전에 이르러 변고에 대하여 급히 아뢰고 속히 이어(移御)하시어 변고를 피할 것을 청하였다"고 그날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개화파들은 우정국의 거사 성공을 확인한 후 바로 창덕궁으로 향했다. 이곳에 거처하던 고종과 명성황후를 겁박하여 경우궁(景祐宮:순조의 생모를 모신 사당)으로 오게 한 것이다. 왕과 왕비의 거처를 경우궁으로 옮기게 한 것은 창덕궁은 소수의 병력으로 지키기가 곤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왕을 압박하여 혁신 정강을 발표하기 위한 공간으로도 경우궁이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개화파들은 일본 공사의 후원을 약속받았고, 실제 일본 공사관에서 15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개화파를 호위하였다. 이날을 거사일로 잡은 것에는 청나라 군대 상당수가 조선을 빠져나갔다는 정치적 계산도 고려되었다. 당시 청나라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병력을 대거 베트남에 투입해 조선의 내정 간섭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거사 다음 날 개화파는 왕명을 빙자하여 수구파들을 경우궁으로 오게 했고, 이곳에서 한규직, 조영하, 민영목, 민태호 등 수구파 대신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이날만은 왕보다도 위에 있는 권력이었다.
권력을 잡은 개화파들이 발표한 혁신 정강은 김옥균이 쓴 '갑신일록'에 모두 14개조로 기록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청과의 조공 관계를 청산하고 대원군을 모셔 온다. 양반 신분 제도와 문벌 제도를 폐지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인민 평등을 실시한다. 입헌군주제에 가깝도록 내각을 강화한다. 모든 재정을 호조에 귀속시켜 단일화한다. 탐관오리를 처벌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1868년에 단행되었던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받아 서양의 근대적 시민국가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기세등등하게 정변을 성공시켰던 개화파의 권력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경우궁을 벗어나, 창덕궁으로 환궁하면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가 창덕궁을 포위하면서, 개화파들에 대한 체포와 살해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 개화파 지원에서 한발 물러섰다. 홍영식과 박영교 등은 피살되었고,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핵심 세력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들의 권력이 3일 만에 그쳤기에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지칭되기도 한다.
개화파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1894년 3월 상해의 한 호텔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고종이 보낸 암살자 홍종우가 일본에 망명 중인 김옥균을 상해로 유인한 후 살해한 것이었다. 박영효는 1910년 10월 일제가 회유하기 위해 주는 후작 작위와 1911년 1월 은사공채를 받으며 완전히 친일파로 변신했다.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1890년 미국 국적을 얻은 후 이름을 미국명 필립 제이손(Philip Jaisohn)으로 고쳤다.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기는 했으나 죽을 때까지 미국 국적으로 살아갔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하여 근대국가를 지향한 개화파들은 30대의 김옥균을 제외하면 주도 세력 대부분이 20대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은 좋았지만 외세 의존이라든가, 정치세력이나 백성들의 지지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급진적으로 정변을 일으킨 한계도 존재했다. 개화파가 제시한 정책들이 1894년 갑오개혁에 반영되면서 그들의 꿈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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