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이름의 조건

입력 2020-12-14 11:45:57 수정 2020-12-14 16:42:16

한철승 글로브포인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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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승 글로브포인트 이사

내 이름은 대체로 흔한 편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 없는 걸 보면 아주 흔하게 불려지는 이름도 아니다.

작명소나 철학원에서 선호하는 이름도 아니다. 요즘도 종종 그런 경향이 보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도 아니다. 굳이 비슷한 이름을 찾자면 유명인사의 이름이 나의 이름의 앞뒤를 바뀐 형태가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고객센터 같은 곳에서 통화할 때 내 이름 대신에 유명한 가수 이름을 부를 때가 있다. 그마저도 전혀 실수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릿한데 초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초겨울에 난로가에 앉아서 군만두 심부름을 시켰다. 같이 있던 담임 선생님이 청소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철승아, 학교 정문 앞에 분식집에 가서 군만두 하나 사 오렴."

"응? 철승이, 이철승?"

"아니 한철승."

아마 국어 선생님에게 떠오른 당시 제일 유명한 철승이는 '이철승'이었나 보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속물성의 상징처럼 들릴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를 하고 있다, 은밀하고 위대한 나의 자존감을 세우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 행동이라고 위안을 삼는 중이다.

녹색 창에서 이름을 넣고 검색을 한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내 모습을, 내가 보유하고 있는 기억보다 더 세밀하고 오래 전의 내용까지 소상이 정리해서 보여준다. 기간별로 관련도별로 검색 결과가 나온다. 기사에 나온 것이나 이미지 검색도 있다.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보다 유명한(?) 사람이 많지 않다. 흔하지 않은 이름일 수 있고 또 세상의 '철승이들'이 검색에 나올 만큼 주목받는 일을 덜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대의 부름에 대응하여 좋은 의미로 검색되기를 바란다. 이름은 태어나는 순간 부여받는데 이후에 검색의 결과는 후천적인 자신의 노력을 결과물이다. 저마다 검색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검색 알고리즘에 노출하려는 인위적인 노력도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바로 다양하고 영향력을 주는 일은 진행해야 하고 또 잘 노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만족과 함께 타인에게도 만족을 주는 삶이 이 시대를 제대로 사는 법이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의 매체도 달라졌다. 독점적이라 할 만한 미디어가 없다. TV, 라디오, 신문 같은 전통 매체에 대한 소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세분화되고 개인화돼서 각자가 브랜드가 되는 시절이다. 쉽지만 파장을 많이 줄 수 있는 방법이 이 시대의 입신양명이다. 자신의 평판을 잘 관리하는 일이다. 은둔해서 살게 아니라면 꾸준히 자신의 이름으로 디지털 업적을 쌓아보도록 하자. 사진 한 장, 댓글 하나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생각보다 디지털에 남는 기억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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