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9. 안동갈비와 냉우동
안동에선 무엇을 먹지? 오늘도 고민이다.
점심이야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걱정돼도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찾아서 먹으면 되지만 저녁 만찬으로는 '근사한'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멀리서 귀한 손님들이 안동을 찾아오면 더 더욱 '안동다운' 음식을 먹이고 싶다.
안동에 사는 우리는 그저 별 생각 없이 먹는 안동음식이지만 어쩌다 안동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는 '별미'처럼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런 음식들이 안동에는 꽤 있다.
서울에 가서 살아보면 우리나라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서울에 몰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국 8도의 이름난 웬만한 음식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식당들이 시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영혼'을 담은 '뭉티기'나 '막창'을 막상 서울에서는 제대로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식도락가들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라도 생고기를 대구 뭉티기로 오해하고 먹는 게 아니라, 연탄불에 구워낸 '고갈비'를 안동 간고등어로 여기고 먹어도 되지만 원조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입을 더 궁금하게 해준다.


햇살이 좋은 날이든, 바람 불어 좋은 그런 날이든, 아니면 첫눈이 소복이 내려 일찍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안동우체국 건너 오래된 골목길 모퉁이 '고향묵집'에 가곤 한다. 구석 골방에 들어가서 파전에 막걸리 한 병 뚝딱 들이키면 바깥 세상은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렇게 몇 잔 들이키다 보면 '묵집'의 기본 찬이기도 한 탱탱한 메밀묵 한 접시와 문어숙회, 수육 등이 차례차례 상에 올라오고 푸짐한 안주를 보면 안동소주의 독한 누룩향기도 맡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안동출신 한 시인의 '안동소주'란 시에서는 그런 정취가 묻어나는 주막집 풍경이 엿보인다.
◇안동소주(안상학)
나는 요즘 주막이 그립다.
첫머리재, 한티재, 솔티재, 혹은 보나루
그 어딘가에 있었던 주막이 그립다.
뒤란 구석진 곳에 소줏고리 엎어놓고
장작불로 짜낸 홧홧한 안동소주
미추룸한 호리병에 묵 한 사발
소반 받쳐 들고 나오는 주모가 그립다.
팔도 장돌뱅이와 어울려 투전판도 기웃거리다가
심샘해지면 동네 청상과 보리밭으로 들어가
기역도 없는 긴 이별을 나누고 싶다.
까무룩 안동소주에 취한 두어 시간 잠에서 깨어나
머리 한 번 흔들고 짚세기 고쳐 매고
길 떠나는 등짐장수를 따라나서고 싶다.
컹컹 짇어 개목다리 건너
말 몰았다. 마뜰 지나 한 되 두 되 선어대
어덕더덕 대푸벼리 해 돋았다. 불거리
들락날락 내 팡을 돌아 침 뱉었다 가래재...
등짐장수의 노래가 멎는 주막에 들러
안동소주 한 두루미에 한 사흘쯤 취재
돌아갈 길 까마득히 잊고 마는
나는 요즘 그런 주막이 그립다.
고향묵집은 곰삭은 안동음식의 향기와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게 해주면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숨겨둔 비밀의 숲 같은 곳이다.
▶안동갈비골목
소는 우리에게 남다른 정서로 다가온다. 요즘이야 먹고사는 형편이 옛날보다 좋아져서 숯불에 부위별로 구워먹고 스테이크로도 먹고 하지만 예전에는 소는 농사의 근본이었고 한 집안의 대들보같은 든든한 존재 그 이상이었다. 다큐영화 '워낭소리'를 보지 않았더라도 소는 평생 주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래서 주인은 소가 늙어 죽어도 고기를 탐하지 않고 고이 묻어주지 않았던가. 소 한 마리만 있으면 농사는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든든했고 때로는 달구지를 끌기고 했고, 집안에 대소사가 있더라도 다 치를 수 있었고 심지어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다.


무엇보다 우리 소 '한우'는 오천년 우리 민족과 함께 하며 살아 온 민족문화의 상징자산이다. 소의 큰 눈망울을 지긋이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정서가 통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소를 키우는 농민들은 '한우는 우리 민족의 영혼'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지만 한우는 수입 쇠고기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하고 고유의 맛을 내서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상북도는 우리나라에서 한우가 가장 많다. 그 중에서도 안동은 경주 상주와 더불어 한우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원래 한우가 약간 추운 '한대성' 가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동한우는 최적의 환경에서 자라는 셈이다.
의외로 안동에는 안동이라는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은 먹거리와 농·식품이 꽤 많다. 안동국시야 지리적 표시인증을 받고 말고 할 거리가 아니지만 안동한우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는 누구나 알 정도로 워낙 유명하다. 안동포(삼베)와 안동콩, 안동생강, 안동산약(마), 안동사과도 지리적 표시인증을 받았다. 콩과 생강 산약은 안동이 국내 최대산지다.
안동갈비골목은 안동역 건너편에 있다. 안동역에서도 '안동갈비골'이라고 적혀있는 긴 굴뚝이 보이는 그곳이 갈비골목이다. 이 굴뚝은 1960년대 이곳에 자리잡아 지역경제의 한 축이 되기도 한 '경상섬유' 공장의 흔적이다. 안동갈비식당들이 하나둘씩 터전을 잡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공장이 옮겨간 1980년대일 것이다.
우리가 한우를 먹는 방식이나 부위는 단순하다. 숯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찜과 수육으로도 먹고 스테이크로도 먹는다. 등심과 안심은 기본이고 갈비살, 살치살, 눈꽃살, 부채살, 치마살 등 구워먹는 한우 부위도 다양해졌다.
안동갈비골목에서는 이런 복잡한 한우 상식은 무시해도 좋다. 여기선 수입산은 없다. 한우만 쓴다. 유명한 대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 가면 한우 갈비와 수입 갈비를 구분해서 가격을 달리하지만 안동갈비골목에서는 수입산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또 갈비 외의 다른 부위도 없다. 오로지 갈비인데다 생갈비와 양념갈비 두 종류만 내놓는다. 생갈비라고 해서 숙성만 시킨 것이 아니라 조선간장으로 가볍게 버무려 내놓는 방식이 독특하다. 양념갈비도 양념이 그리 강하지 않고 마늘을 넣어 버무린 정도의 가벼운 느낌의 마늘양념갈비가 인기다.
가격은 어느 식당이나 차이가 없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로 쇠고기 가격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갈비가격이 얼마 전부터 1인분(200g)에 28,000원으로 3,000원씩 올랐다. 어느 식당을 찾더라도 안동갈비 맛은 대동소이하게 괜찮다. 경상도에서 '괜찮다'는 맛의 표현은 '맛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식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3인분 이상을 먹으면 살이 조금은 붙어있는 갈비뼈를 넣어 끓이는 갈비찜과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내놓는다.
낮에 가볍게 해장하러 갔다가는 다시 술자리를 피하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음식 갖고 노는 '수요미식회' 등의 TV프로그램이나 요리연구가 백종원 등의 발길도 잦은 곳이다.

▶신선식당 냉우동
고기가 아닌 다른 방식의 해장을 하고 싶을 때는 안동 신시장 주변에 있는 '신선식당'에 가서 '냉우동'을 먹는다.
우동이야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 유명한 우동집들이 워낙 많이 있어서 안동의 우동집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얼핏 봐서는 '앗 이게 냉우동인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신선식당 냉우동은 비주얼이 특별하다. 시원한 멸치육수에 면을 넣고 그 위에 고명으로 노란 단무지채와 김가루 삶은 계란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면발이 일반 우동면보다 가늘었다. 그래선지 면발이 주는 식감이 탱글탱글하고 함께 씹히는 단무지채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진 덕에 상큼한 맛이 배가된다. 단무지를 고명으로 쓴 비법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맛을 내는 다른 비법은 멸치육수를 낼 때 멸치를 통으로 끓여내는 데에 있다. 얼음까지 동동 띄운 차가운 육수 덕에 멸치 특유의 비릿한 바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단무지가 키포인트다. 해장하기 좋은 냉우동 식당이다. 메뉴판에는 비빔우동과 짜장면도 있으나 주로 냉우동을 먹는다. 가격은 4,000~5,000원.
1981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40년이나 된 노포(老鋪)가 됐다. 옥동에 '장수우동'이라는 상호로 신선식당과 비슷한 형태의 '냉우동'을 내놓는 식당도 있다. 원조는 신선식당이다.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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