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게 꿈이야? 생시야?

입력 2020-11-25 15:24:05 수정 2020-11-25 19:34:58

문재인 대통령(왼쪽), 윤석열 검찰총장. 자료 이미지
문재인 대통령(왼쪽), 윤석열 검찰총장. 자료 이미지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된 2017년 5월 19일이었다. 검찰의 꽃이라 불리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브리핑이 나왔다.

윤석열 검사는 검사장도 아니었는데 바로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이 됐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파격 중의 파격'이라고 썼다.

일반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 인사 발표는 검찰에서 내놓지만 청와대가 브리핑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임명되지 않았는데 서울중앙지검장부터 뽑은 것 역시 순서가 뒤바뀐 인사라는 목소리를 낳았다.

인사 발표가 나오자 여당은 예상대로 반겼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은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한 '족집게 인사'라는 지적이었다.

여야 간 의견이 엇갈린 것은 윤 검사장의 '전력'(前歷) 탓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4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던 법무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고는 국감장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의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권력을 향해 호기롭게 '덤벼든' 그는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의 잇따른 좌천 인사까지 당했다.

그러나 그는 곧 부활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했고 이때부터 현재의 집권 세력으로부터 '의로운 검사'로 본격 소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17일엔 마침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부정부패를 척결해 왔고,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줬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인선 브리핑)

여당 의원들의 엄호 속에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한 그는 지명 한 달 뒤인 7월 25일,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윤 총장님은…"이란 말을 꺼내며 다정다감한 수식어까지 윤 총장에게 붙여줬다.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에서 윤 총장에게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섰던 윤 총장은 신망받던 검사에서 반개혁적 검사로 낙인찍혔다. 마침내 직무 정지 조치까지 당했다.

"과거에는 저한테 안 그러지 않았느냐?" 윤 총장은 지난가을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질타하는 한 여당 의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상대편을 향한 적폐 수사 때는 편을 들어주다가,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강하게 주문했던 것처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집권 세력을 향해 수사의 칼끝을 겨누자 집권 세력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취지의 작심 발언이었다.

청와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탁월한 지도력' 덕분에 그는 검찰총장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 총장의 행동까지 법무부는 직무 정지 사유로 삼고 있다.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금의 집권 세력이 만들어 내놨던 '최고 검사 윤석열 파노라마'를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은 요즘 펼쳐지는 장면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럽다. 하긴 꼴찌 공항을 1등 공항으로 동래파전 뒤집듯 엎는 판에 멋진 검사를, 내쳐야 할 검사로 한순간에 뒤집어 판정하는 것도 국민들이 입을 닫고 접수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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