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구름 위에 앉아 어디론가 향하는 스님의 뒷모습이다. 주인공이 한 명인데 뒷모습뿐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표정도 알 수 없다니!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가가 스스로를 위해 그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원 김홍도는 불제자였다. 정조의 어진 제작에 동참화사로 참여한 공로로 1791년(정조 15년) 충청도 연풍(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 현감에 제수되었을 때 가까운 조령산 상암사에 시주한 일이 있고, 여기에서 기도해 외아들 양기를 얻었다.
'염불서승'은 참 특별한 그림이다. 주인공이 뒷모습인 것도 유례가 없지만 먹물 옷을 입은 민머리의 한 스님일 뿐 불보살이나 여느 조사가 아니라는 것도 그렇다. 한 명의 출가자로서 구도의 길을 갔던 스님은 금생의 업을 마치고 서방정토를 향해 구름을 타고 가고 계실 것이다. 앉은 자리도 비슷한 예가 없다. 불보살의 연화대좌는 거대한 한 송이 연꽃이지만 스님의 자리는 송이송이 연꽃과 연잎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꽃자리이다. 연꽃에는 붉은색을 연잎에는 푸른색을 담채로 살짝 얹어 은은한 영롱함으로 스님을 장엄했다. 연푸른 바림으로 아득한 허공을 드러냈고 유려한 선들의 일렁임으로 구름을 표시했다. 서명은 나이 든 단원인 단로(檀老)이고 인장은 자인 사능(士能)과 호 단원(檀園)이다.
스님의 머리를 둘러싼 홍운탁월의 둥근 원은 두광(頭光)의 광배로 보이기도 하고, 하늘의 보름달로 보이기도 하고 둘 다로도 보인다. 그림의 바탕이 종이도 비단도 아닌 결 고운 모시인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며 이룬 짜임의 촉각적인 화면은 초월의 느낌을 물질화하는 듯하다. 불규칙하게 교차하는 촘촘한 질감이 베틀에 앉아 이 베를 올올이 짰을 어떤 손길을 친근하게 감지시키기 때문이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의 신앙 체계로서 뿐 만 아니라 정치 이념에 있어서나 사회사적, 문화사적으로 한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유교국가가 된 후에도 불교회화는 사찰 전각의 탱화나 야외용 괘불화 뿐 아니라 도석화(道釋畵)로 분류되며 감상용으로도 적지 않게 그려졌다. 수묵화의 필묵의 아름다움과 인간 정신의 성스러움인 종교심이 합일된 이 작품 외에도 관세음보살 등 불교적 소재를 감상화로 그린 김홍도의 걸작이 여러 점 전한다. '염불서승'은 김홍도의 대가다운 영감과 필력이 함께 무르녹은 너무나 조선적인 도석화이다. 중국 선종화, 일본 선화의 선기(禪機)와 선미(禪味)의 파격 대신 담담한 평상심과 무언의 초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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