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혹시 내가?

입력 2020-11-17 14:36:21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뒤편에 좀 떨어져서 앉아주세요."
"선생님! 저 아무 증상 없어요."
"혹시 제가 무증상 감염자일 수도 있잖아요."
요즘 진료실에서 가끔 오가는 대화다.

장티푸스는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물과 음식, 사람을 통해 전파되는, 아주 전염력 강한 감염병이다. 항생제 덕분에 요즘은 장티푸스로 목숨 잃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과거에는 치사율 25~50% 정도였다. 이 병이 돌면 일가족이 몰살당하거나 동네 줄초상이 나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래서 별명도 '염병(染病)'이다.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고 불리던 여인이 있었다. 본명은 메리 맬런(Mary Mallon)으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장티푸스 메리'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미국 최초의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감염되면 무조건 발병된다고 알고 있었다.

메리는 뉴욕에서 가정부로 일했는데 그녀가 일하러 간 집마다 반드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장티푸스로 앓아누웠고, 얼마 후 메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메리가 직장을 바꿀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뉴욕시 보건 당국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경찰력을 동원해서 메리를 가둔 후 청결 습관을 조사했더니 그녀는 손을 잘 씻지를 않았고, 검사 결과 쓸개에 잠재하던 세균이 대변으로 계속 배출되었으나 놀랍게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메리는 무증상 감염자였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라 치료 대신 3년간 보호 구금 후 "앞으로 위생 습관을 잘 지키고 요리 관련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 후 풀려났다. 한동안 세탁부로 일했지만 요리사보다 일은 고되고 급여는 많지 않자 메리는 다시 당국의 눈을 피해 가명으로 여러 곳에서 요리사로 일하였고, 결국 더 많은 사람을 감염시켰다. 그 결과 그녀 때문에 적어도 53명이 장티푸스에 걸렸고 3명이 사망하였다. 결국 메리는 체포되었고 감염의 온상인 쓸개 제거 수술을 받지 않으면 다시 격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를 거부한 채 23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평생 많은 사람에게 장티푸스를 옮겼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 증상 없었던 무증상 감염자로.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일상은 제한되었고 삶은 힘들어졌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지만 감염원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치료제는 요원하고 개발 중인 백신도 빨라야 내년이다. 그래서 손 씻기와 마스크, 거리두기가 현재로서는 최선의 코로나 퇴치법이다.

증상이 있는 환자보다 장티푸스 메리처럼 오히려 무증상 감염자가 코로나 확산에 더 위험하다. 하지만 누가 무증상 감염자일지 알 수 없다. '혹시 내가?' 하는 마음으로 거리 두고, 손 씻고, 마스크하며 조심하는 수밖에. 코로나가 끝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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