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메신저 '보장사', 대리시험 전문가 '거벽',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
조선잡사/ 강문종, 김동건, 장유승, 홍현성 지음/ 민음사 펴냄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 매 대신 맞는 '매품팔이', 발로 뛰어 소식 전하는 '보장사', 분뇨처리업자 '예덕선생' 등 기상천외한 직업부터, 헤어 디자이너 '가체장', 과학 수사대 '오작인', 기둥서방 '조방꾼' 등 현존하는 직업까지…. 젊은 한국학 연구자 4명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백성의 67개 직업군을 파헤친 신간 '조선잡사'가 출간됐다.

◆조선 사회상 반영하는 67개 직업
이 책은 조선 여성들이 집안일만 했으리라는 선입견을 바로잡을 '일하는 여성들'로 시작해 '극한 직업', '예술의 세계', '기술자들', '불법과 합법 사이', '조선의 전문직', '사농공상'까지 총 7부로 구성됐다. 각 장의 내용이 연결돼있기 보다는 각 장마다 하나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어 어떤 장을 택해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극한직업'(2부)이나 '불법과 합법 사이'(5부)에서는 조선시대 내밀한(?)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직업, 현대 독자에게 덜 알려진 직업, 하는 일이 흥미로운 직업 등 세가지 기준으로 소개할 직업을 골랐다. 농부, 의원, 의녀, 다모, 화원, 기녀 등 매스컴을 통해 다뤄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직업은 제외했다.
직업의 탄생에는 그 직업이 필요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이 반영되므로 사회상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67가지의 직업은 시장, 뒷골목, 술집, 때로는 국경에서 바닷속까지 오가며 치열하게 먹고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대상을 펼쳐낸다.
조선 시대 직업의 정확한 실상을 문헌 근거와 함께 들여다보며, 그러한 일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도 찬찬히 살핀다. 함께 수록한 컬러 도판은 생생한 이해를 돕는다. 군더더기 없고 딱딱한 설명 투의 문체지만 각 장이 그리 길지 않아 수월하게 읽히는 점도 장점이다.
사라져버린 직업도 있고,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는 직업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먹고사는 일을 둘러싼 보람과 애환이다. 조선시대 보통 사람들의 밥벌이의 역사를 들여다보노라면 '어느 시대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며 괜히 찡한 마음이 들게 된다.

◆인간 메신저, 대리시험 전문가, 호랑이 잡는 군대
과거의 국가고시였던 과거시험에도 부정행위가 성행했다. 과거시험장에 대놓고 책을 갖고 들어가거나 예상 답안지를 만드는 행위, 시험지 바꿔치기, 채점자 매수, 합격자 이름 바꿔치기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됐다. 그중 가장 악질은 대리시험 전문가인 '거벽'이었다. 유광억이란 이는 심지어 수수료의 많고 적음에 맞춰 답안지를 작성해주기도 했다.
사극에서 중요한 소식을 전할 때 보통 말을 타고 달려가지만 실제 조선에서 말은 무척 비싸고 귀한 몸이었기에 몸값이 싼 사람이 두 발로 달려야 했다. 인간 메신저 '보장사'(報狀使)가 활약한 배경이다. 잘 달리는 노비를 거느린 양반은 정보력으로 권세를 떨쳤다면, 보장사 일을 하는 백성은 밤낮없이 권력자들의 소식을 전하느라 다리가 부르텄다.
군대에 대신 가는 아르바이트도 있었다. 조선시대 양인 남성은 군역의 의무를 져야 했는데, 군포로 이를 대신할 수 있었다. 군포를 낼 여력도 없는 이는 품삯을 주고 '대립군'을 고용해 국방의 의무를 대신 지게 했다. 나라에서 직접 대립군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군졸들이 대립군을 사 임무를 맡기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종착지가 치킨집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조선 시대 선비의 종착지는 짚신 삼기 아니면 돗자리 짜기였다. 밑천도 기술도 필요 없다. 조금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농사짓는 백성은 물론 사찰의 승려도 감옥의 죄수도 모두 돗자리를 짜서 생계에 보탰다.
연고 없는 시신을 묻어주고 극락왕생을 빌어준 '매골승'은 어쩐지 독자를 숙연하게 한다. 특히 역병으로 죽은 시신은 병이 옮을까 가족들도 손대기를 두려워했지만, 매골승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했다. 전쟁과 기근이 일어나면 매골승의 업무는 급증했다. 이밖에 냇가에서 사람을 업어다 건네준 월천꾼 등 조선의 '극한 직업'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조선 사람의 삶이 궁금한 독자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저자들은 "직업의 탄생과 소멸, 변화를 살핌으로써 미래의 직업을 전망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며 "어렵고 험난한 업을 이어가는 모든 직업인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고 했다. 34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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