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균형발전을 덮은 균형발전

입력 2020-11-03 15:28:46 수정 2020-11-03 18:58:27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세종시 집값 급등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종시 아파트 가격은 전국 최고 상승률에 1년 만에 2배 뛴 단지들이 나오고 있다.

땅값도 들썩인다. 올 3분기 전국 땅값이 0.95% 상승한 가운데 세종시(4.59%)가 가장 높은 상승률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세종시 집값·땅값에 불을 붙인 것은 여당에서 지난 7월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16년 만에 재점화하면서부터다.

갑작스러운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터지자 야권에선 즉각 "부동산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기 신도시 조성,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신규 택지 발굴 등 수도권 중심 정책을 추진해오던 문재인 정부의 그간 행보와 달랐기에 이러한 비판이 나올 여지를 만든 측면도 있다.

당장이라도 큰 변화가 생길 것만 같던 기대감과 달리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여야 이견으로 합의가 어려워지면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 집값 상승세를 잡기는커녕 세종시 집값까지 쏘아 올렸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실행력이 뒤따라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역균형 뉴딜'도 이슈다. 문 대통령이 "지역균형 뉴딜은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이다. 국가 발전의 축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라며 적극 추진 의사를 밝혔고, 당정에서도 의지를 피력하면서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지역 일각에서는 묘한 기시감에 회의적인 시각이 숙지지 않는 분위기다. 여권이 지역균형 뉴딜로 국가균형발전의 무게 중심을 급격히 옮기면서 상대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물론 공공기관 2차 이전도 관심에서 현저히 멀어지는 모습이라서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공공기관 유치를 위해 시 차원의 사전 작업은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정부 방침이나 가이드라인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갈등과 정치적 리스크가 불가피한 공공기관 2차 이전 추진을 또 미루기 위해 지역균형 뉴딜을 우선적으로 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9월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위한 불씨를 지핀 지 2년이 지났다. 4·15 총선 전엔 "총선이 끝나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시즌 2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이전 대상과 규모에 대한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기조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반가량 남은 시점에서 수도권의 인구 유입은 가속화되면서 비수도권 전체 인구를 넘어섰다. 수도권 집중화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한 것이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균형발전이 '하는 척'하는 구호로 전락해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고, 마땅히 담겨야 하는 고민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균형발전은 진정한 고민 없이 불쑥 내뱉었다 잠시 내버려 둘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말이 있다. 대형 이슈가 생기면 그전에 불거진 이슈는 점점 눈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 로드맵이 나오지 않고 이번에도 말로만 끝난다면 '이슈를 이슈로 덮었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아니다. '균형발전을 균형발전으로 덮었다'는 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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