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 발표한 '질병 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에서 박쥐 가면을 쓴 활동가가 날린 일갈이다. 인간들은 박쥐를 탓했다. 하지만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지난 7월 '인간들에 의한 동물 서식지 파괴와 야생동물 거래'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질병 X'는 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인류를 위협할 질병으로 경고한 8가지 중 마지막 하나다. '미지의 바이러스'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강타했고, 지금까지 약 119만명 사망자와 4천50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질병 X'가 도래한 것일까?
2011년 개봉된 영화 '컨테이젼'은 코로나19 대유행을 예언한 작품이다. 트랙터를 앞세워 무자비하게 벌목을 하자 서식지를 잃은 박쥐들은 인근 돼지 축사를 향한다. 박쥐의 입에서 떨어진 바나나를 먹은 돼지는 주방장에게 팔려 간다. 맨손으로 돼지를 요리한 주방장이 손님과 악수를 함으로써 대유행이 시작되고 무려 2천600만 명이 사망한다.
이처럼 종간 장벽을 넘어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2%가 야생동물에서 유래한다. 서식지를 파괴한 인간을 새로운 서식지로 바이러스가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 축산 농장의 99%는 육류의 대량 생산을 위한 '축산 공장'이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도 '축산 공장' 때문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고 야생동물들은 서식지를 빼앗기고 있다.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1928년 대선 공약이다. 불과 100여년 전 미국에서도 치킨조차 먹기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우리의 육류섭취가 일상화된 것도 불과 4, 50년 전이다. 소득 증대로 육류 소비가 급증하자 '공장식 축산'이 등장했다. 닭은 A4 반장 크기의 좁은 뜬 장에 갇혀 '옴짝달싹' 도 못하고 갇힌 소는 푸른 초원의 풀을 뜯지 못한다. 이러한 밀집된 사육환경이 바이러스의 무서운 변이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
탐욕스러운 자본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막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우리의 식생활도 성찰해야 한다. 1970년에 비해 우리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0배나 늘었다. 지나친 육류 섭취는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에도 '육식의 욕망'은 줄지 않는다. 최근 들어 '채밍아웃'(채식 선언)을 하는 사람이 늘고, 서울시교육청이 청소년들의 '채식 선택권 보장' 요구를 수용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코로나19로 홍콩 동물원에 관람객이 사라지자 자이언트 판다가 10년 만에 짝짓기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미항 베네치아에 유람선 운항이 중단되자 물고기 떼가 돌아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뉴노멀(new normal)'은 모든 생명체와의 공존·공생이 아닐까?
'성장, 개발, 육식, 인간들의 세 가지 마약을 끊어라.'
질병 X 시대 '절멸의 운명'을 예감한 동물들이 시국선언에서 남긴 유언을 깊이 새겨야 할 때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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