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추상표현주의 화가 박경아

입력 2020-10-25 06:30:00

박경아 추상표현주의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 걸린 대형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경아 추상표현주의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 걸린 대형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경아 작
박경아 작 'walk 20100#012' (2020년)

미술사에서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일어난 주관적 표현에 중점을 둔 미술운동을 가리킨다. 특히 고흐의 유작전에 감명을 받은 작가들이 중심이 돼 외계의 인상을 주관으로 결렬하게 연소시켜 비극적 표정을 띤 분방한 격조로 분출시키는 점에서 일관된 특색을 갖고 있다.

독일 표현주의는 이후 1950년대 미국에서 액션 페인팅과 같은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데, 이를 일컬어 이전의 기하학적 추상주의를 뜻하는 '차가운 추상'과 구별하기 위해 '뜨거운 추상'으로 불리게도 됐다.

대구시 동구 대림동에 있는 한 오피스건물 3층(165㎡)은 추상표현주의 화가 박경아(45)가 2018년부터 작업하고 있는 곳이다.

"미술대학 시절부터 구상엔 애초 관심이 없었고 반추상이나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에 마음이 많이 끌렸더랬습니다. 강렬한 색과 거친 붓질로 자신의 내면적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저의 취향과 맞았던 셈이죠."

대구 토박이인 박경아는 영남대 미술대학 서양화과(94학번)를 나왔고 졸업과 동시에 더 나은 화가의 꿈을 위해 1998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라이프치히에서 어학과정을 마친 작가는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10년에 걸쳐 디플롬과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마치고 2007년 귀국했다.

"독일 미대 과정은 우리나라 미대와 달리 무척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지도교수 우도 쉘(Udo Scheel)을 사사하면서 2005년 독일 조에스트시에서 '시선'(Sichtweisen)이라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연다. 이때 그림은 반추상계열의 낭만주의적 화풍으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나 밖에서 안을 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먼 풍경을 선보였다. 창문은 이곳과 저곳, 현실과 꿈, 체험과 회상을 넘나들고 또 시간의 기억 사이를 넘나드는 통로로서 일종의 암호인 셈이다. 그리고 그 창문을 통해 드러난 세상은 멀고 흔들리며 몽롱하기조차 한 미완의 풍경들이다.

"귀국 후 2008년부터 2년간은 가창창작스튜디오에서 2기 레지던시를 했고 당시 분도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을 해와 2009년에 독일에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람객들의 호평을 얻었어요."

이때도 박경아는 재현적 풍경보다는 상상 속 풍경이 화면에 드러났고 창과 원경, 시선의 안과 밖 같은 이항적 대립구도를 통해 갈 수 없는, 그러나 마음속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풍경에 천착했다. 특히 2009년은 작가로서 세 번의 전시를 갖게 되는데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과 서울 예화랑 초대전이 그것이었다.

박경아 작품을 자세히 보면 유화를 사용하면서도 화면에 붓질을 엷게 바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엷은 붓질이 그림 그리는 맛을 주고 독일에서도 좋은 평가는 받았다고 했다.

"언제나 그림을 그릴 때면 나의 자서전을 써내려가듯이 그림을 그립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힘들 때의 심리 상태를 그림으로 옮기는 걸 즐깁니다."

작가의 '창' 연작에 이은 '커튼'연작은 서울 예화랑 초대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전 창 그림이 보다 추상적으로 바뀌면서 창문의 틀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자연히 연상되는 커튼이 창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한 두 번의 인생고비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박경아도 2012년 대구미술관의 'D-아티스트' 참가 후 약 2, 3년 동안 직업적 고민과 회의가 겹치면서 개인사적으로도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우울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게 될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삶은 힘들었지만 이 시기에 그림을 잠시 내려놓고 삶의 현상황 전반에 걸쳐 직시하게 됐고 때마침 2015년에 영천 창작스튜디오에 레지던시로 입주, 마음을 추스를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영천 창작스튜디오서 작가는 이전의 얇은 붓질에서 두터운 붓질로의 변화를 위해 유화와 실리콘을 섞은 실험적 화풍을 시도하면서 화면에 꽃잎이나 이파리 등이 등장했고 화면도 훨씬 밝아지게 됐다. 특히 자연의 작은 대상들이 작가의 심상에 들어와 또 다른 존재의 그림자로 변형됐고 그 변형된 새로운 조형언어가 화면에 표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7년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박경아는 대구 전갤러리에서 '숲,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을 열면서 보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화풍을 대중들 앞에 드러냈고,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추상표현주의로의 욕망이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2018년 서울 비선재갤러리의 후원으로 개인전과 화실이 마련되면서 작가의 추상표현주의적 화풍이 빛을 보게 됐고 그해 부산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다.

"매사 초연하고 스스로 감정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즉흥과 우연에 의한 색감 선택, 두꺼워진 붓질로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 붓 대신 미장용 칼을 이용해 캔버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작업도 무척 재미있었죠."

박경아에게 그림은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와 미래도 자신은 그림 그리는 사람일 거라는 작가는 그림이 삶의 원동력이자 늘 그리운 어머니의 품이며 버팀목이자 인생의 등대라고.

덧붙여 작가는 자기 화풍에 늘 풍경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추상표현주의에다 '낭만적'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인 즉, 박경아의 추상화는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림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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