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삶의 장소, 벽 없는 미술관

입력 2020-10-22 14:14:44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프랑스의 작가인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문화부 장관시절에 벽에 그림을 걸지 않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도시를 미술관처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예술품의 복제 이미지로 가득 찬 '벽 없는 미술관'으로 모든 시대의 모든 예술을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말로의 '벽 없는 미술관'의 논쟁이 남긴 숙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지금 한국에서 필요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장소 맥락적인 '벽 없는 미술관'이 현실이 되는 길은 뭘까. 그것은 공공미술이 다만 도시의 미관이나 포토 존이 아니라, 특정 장소가 가진 기억과 지역민의 의식을 담아 과거와 미래를 품고 새로운 문화를 통한 감성생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의 미술은 공동체의 삶의 장소인 의식주를 위한 집과 상업시설 그리고 공장 등 문화 활동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개입해 특정장소에 녹아들어야 한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미술관이나 화랑 밖 도심의 거리에 설치된 미술품이나 조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체감하지 못하는 가운데 삶의 장소에서 만나는 '벽 없는 미술관'이 일상이 되고 있음이다. 이처럼 거리에서 만나는 미술이 삶 속에서 도시인의 감성 속으로 녹아들어야 하는 공적인 미술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도시민의 기억과 의식이 만나는 공공미술은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되는 작품과는 달리 도시의 복합적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진다. 공공미술이 불특정 다수라는 열린 장소(미술에 관심 없거나 부정적인 시각 포함)에 설치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공공미술은 유사한 벽화나 조각이 아니라, 그 장소가 가진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하는 감성생태, 지역민의 감성생태를 위한 창의적인 시각을 담아야 한다. 감성생태는 지역민의 삶을 둘러싼 도시의 환경과 도시가 가진 정서, 도시민의 기억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생생하게 살아나 숨 쉬는 문화도시를 위한 공공미술은 인문학과 미학의 결합, 기술과 예술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적 모색을 필요로 한다. 그 시작은 도시 곳곳에 숨은 보석을 발굴해 지역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치 발굴의 원석(장소개념과 의미)은 시민의식과 예술가의 상상력을 결합하는 것에 있다. 이는 모방이 아닌 창의성이 담길 때, 삶과 예술이 만나는 '벽 없는 미술관'이 될 수 있다.

모방이 아닌 창의성을 위한 시각과 태도는 같은 것을 다르게 보게 하는 힘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거나 살아가는 곳은 같은 시간 같은 날이 아니다. 다시는 없을 새로운 시간이자 처음 맞는 새날이다. 같은 도시에서 몇 년 혹은 수십 년을 살면서 매일매일 다른 시간 다른 삶 속에 있다는 것, 내가 살아가는 도시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치로 만드는 것은 선입견을 벗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허물을 벗고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 그 눈에 비친 삶의 장소, 바로 벽 없는 미술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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