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재난 가운데 울리는 음악

입력 2020-10-20 14:18:18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2013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온통 상처투성이에 줄은 2개만 남아서 연주가 불가능한 바이올린이 42파운드(약 7만원)에서 시작하여 10분 만에 90만 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되었다. 도대체 무슨 바이올린이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은 구명보트에 서로 먼저 타려고 아우성치는 가운데 악사들이 승객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한다. 연주는 침몰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고 악사들은 모두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 악단장 월레스 하틀리 (Wallace Hartley)가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바로 경매에 나온 바이올린이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희생과 용기의 상징'이라고 평가한 바이올린.

2차 대전 중, 허기와 추위, 공포 속에서 폐건물에 숨어 살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순찰 중이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독일 장교는 유대인 피아니스트에게 연주를 부탁하고, 스필만은 낡은 피아노로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한다. 그리고 독일 장교는 스필만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지 않고 살려주는데, 이 역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 독일군 라디오에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온다. 전파는 전선을 넘어 연합군들에게까지 흘러 들어가고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이 노래를 사랑하게 된다. 급기야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전투도 잠시 멈추고 병사들은 두고 온 여인을 그리워하였는데, 그 노래는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 공연장을 찾았다. 거리두기로 인해 한 자리 건너 한 사람씩 떨어져 앉았지만 공연에 목말랐던 관객들로 허락된 좌석은 거의 다 찬 듯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첫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지 힘든 시기에 어렵게 독창회를 마련한 성악가에게 관객들은 큰 박수로 호응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 격리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였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대구시립교향악단은 무관중 연주를 실시간 중계하여 많은 이들을 위로하였다. 또한 가수 나훈아는 TV에 출연하여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격려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정지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고, 코로나가 끝나는 것 말고는 특효약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음악의 힘은 의외로 강하다. 재난 가운데 혼란을 진정시키고, 전투를 멈추게 하며, 죽을 목숨도 살린다. 그 어떤 전쟁이나 재난 가운데서도 음악은 멈춘 적이 없다. 언젠가 코로나라는 재난도 물러가겠지만 그날까지 우리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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