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왜 우리 도로는 늘 불안하고 위험할까

입력 2020-10-20 05:00:00

7일 오후 대구 서구 남평리네거리 횡단보도에서 서부경찰서 교통경찰관들이 보행자 신호등을 무시한 채 진입한 차량을 멈춰 세운 뒤
7일 오후 대구 서구 남평리네거리 횡단보도에서 서부경찰서 교통경찰관들이 보행자 신호등을 무시한 채 진입한 차량을 멈춰 세운 뒤 '보행자보호위반' 경고장을 발부하고 있다. 올 11월부터는 위반시 범칙금 6만원이 부과될 예정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국내 운전자들에게 교통법규나 교통사고 과실 분석·상담으로 가장 친숙한 전문가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한문철'이라는 이름을 먼저 입에 올린다. 자동차 블랙박스 관련 TV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유튜브에 '한문철TV'라는 채널도 운영 중인데 채널 구독자가 80만 명을 넘는다. 지난 2018년 채널 개설 이후 교통사고를 당한 운전자들과 상담하고 유튜브에 올린 블랙박스 영상만도 8천여 점, 누적 조회수가 5억2천만 회를 웃돌 정도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가 교통사고 관련 소송이나 법률 상담 등 후속 처리에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사고의 핵심에 접근해 정확히 규정을 적용하고 과실 비율을 명쾌하게 판단해 제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랙박스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도로 현장의 현실을 상식과 합리주의에 기초해 해석하고 운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도 많은 운전자들이 이 채널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특히 그는 잘못된 우리의 교통문화와 불합리한 교통법규에 주목한다. 최근 교차로 '딜레마존' 사고에 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나 비보호 좌회전이나 회전교차로 사고 사례, 도저히 피하기 힘든 각종 교통사고 등에서 경·검찰과 법원이 놓친 부분을 세밀히 분석해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은 사례도 많다. 특히 지난 3월, 교차로에서 사고로 숨진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족인 12세 초등학생에게 보험회사가 수천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은 사례는 상식과 공익성에 대한 한문철TV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지난달 중순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교통법규 위반 단속 사례도 큰 반향을 낳았다. 신호등 고장으로 교차로를 천천히 통과하다 다음 신호등에서 신호위반으로 단속된 사연인데 경찰의 어이없는 단속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신호등이 고장났으면 현장에서 수신호는 못할망정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함정 단속이나 하는 경찰관을 문책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제보자의 이런 억울한 사연에 해당 경찰서 간부가 유튜브에 실명 댓글을 올려 대신 사과하고 범칙금과 벌점 원상회복 조치를 약속하면서 겨우 사태가 무마됐다. 비록 몇몇 경찰관에 해당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통경찰관이나 사고 조사관들의 불합리한 법 집행과 판단,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는 점에서 반성할 대목이다.

최근 대구지방경찰청이 벌이는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 정착' 캠페인에 대한 시민 관심이 크다. 대구경찰청은 최근 몇 달간 교차로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우회전 차량에 대한 시민 홍보와 계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까지 계도 기간을 거쳐 11월부터는 보행자보호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보행자가 횡단보도 근처에만 있어도 자동차를 일시 멈추도록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운전면허 소지자는 3천264만9천 명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국민이 매일 운전대를 잡는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늘 불편하다. 허점투성이의 도로교통 환경, 그릇된 운전문화와 교통법규에 대한 무지는 도로를 지뢰밭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다 상식과 합리성, 공정성이 결여된 사법 당국의 공무 처리나 법 해석 등은 교통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잘못된 운전자 의식과 모순된 교통법규를 더는 그냥 보고 넘겨서는 안 된다. '왜 우리 도로는 늘 불안하고 위험할까'라는 의문이 사라질 때까지 고민하고 잘못을 빨리 고쳐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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