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진 정치부장
얼마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본 글이다.
'법무부는 범죄자엔 찍소리 못하지만, 검사와 싸우고'
'국토교통부는 청와대 다주택자엔 찍소리 못하지만, 집주인들과 싸우고'
'보건복지부는 봉하마을 모임은 찍소리 못하지만, 의사들과 싸우고'
'노동부는 극렬 노조 데모꾼엔 찍소리 못하지만, 자영업자와 싸우고'
'환경부는 태양광시설 환경파괴엔 찍소리 못하지만, 원전 사업체와 싸우고'
'기획재정부는 재정 펑펑 쓰는 여당엔 찍소리 못하며 자영업자와 싸우고'
'국방부는 주적 북한엔 찍소리 못하지만, 피살 국민과 싸우고'
그러면서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역대급 정부'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다소 억지와 과장이 묻어났지만, 최근 만난 적잖은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들었던 내용인지라 실소가 났다. 여권이 조소당하는 현실이라 야권은 신이 났을까? 천만에.
현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실정을 비판하는 만큼 많이 듣는 얘기는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조롱이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대처나, 이를 지지율 상승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데 대한 걱정과 우려가 섞인 말들이다.
이번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도 마찬가지다. 국감 시작 전 '정부 여당을 제대로 파헤쳐 그로기 상태로 몰아보겠다'는 결의는 온데간데없는 상황이 국감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국정감사의 주역은 야당이다. 흔히 국감을 '야당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특히 제1야당에 국정감사는 판도를 움직여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래서 국감 성적표는 곧 야당의 성적표가 된다.
이번 국감을 살펴보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 서해상 실종 공무원 피살 사건,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기 사건 등 국정을 뒤흔들 수많은 이슈들이 터져 나왔지만 야당의 존재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이다.
대신 당 대표와 중진들 사이의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더욱 나락으로 주저앉고 있는 국민의힘만 보일 뿐이다.
며칠 전 통화한 여의도 한 정치권 인사는 이를 두고 "당내에선 겉으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중진들의 갈등이 당의 노선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당내 주도권 확보와 당의 차기 대권 주자 옹립을 둘러싼 힘겨루기라고 평가한다"면서 "조만간 두 진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정국 주도권을 잡기도 바쁜 국민의힘이,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의 대패를 교훈 삼아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내부 분란만 일으키고 있으니 안타깝다"며 "총선 참패 후 절치부심하며 당색과 정강정책을 바꾸는 등 갖은 노력을 하지만 좀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당장 내년 보궐선거와 후년 대통령선거가 벌써 걱정"이라고도 했다.
지역 한 대학교수는 "국가가 강해지려면 행정부뿐 아니라 국회가 강해야 하고, 국회가 강하려면 야당이 강해야 한다. 국회의 강한 견제가 없는 정부는 결국 도그마에 빠지고 국민과 유리된다. 야당이 활동하지 못하는 국회는 정부의 들러리만 될 뿐이니 강해질 수가 없다"고 야당의 분발을 조언한다.
국감은 이제 끝나지만, 국정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 대패의 원인이었던 '비호감'을 떨쳐내고, '자유·공정·법치'의 보수 가치를 앞세운 수권정당으로서 모습을 갖추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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