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국지] 이승만과 동탁

입력 2020-10-01 23:00:00 수정 2021-12-13 13:31:20

'반동탁연합군'과 '4·19혁명'

이승만(1875-1965), 동탁(139-192). 매일신문DB, 코에이 삼국지11
이승만(1875-1965), 동탁(139-192). 매일신문DB, 코에이 삼국지11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대한민국 헌정사 속 3명의 독재자,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그림자와 빛을 삼국지라는 거울로 비춰 봅니다. 네이버에서 '시사 삼국지'를 검색해보세요.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자. 맨 앞 전문은 이렇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헌법은 앞으로 갈수록 중요하다. 저 전문에서도 앞부분을 보자. 3·1운동에 이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언급되고 바로 다음으로 4·19민주이념이 나온다.

그런데 저 단어들 사이 빠진 게 좀 있다. 8·15광복, 미군정, 6·25전쟁, 이승만 정권(제1공화국)이다.

8·15광복은 3·1운동과 임시정부라는 단어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주권이 없던 미군정의 역사는 우리 주권이 있음을 알리는 저 전문으로 충분히 해소한다. 북의 남침에 의해 벌어진 6·25전쟁 및 그에 따른 분단에 대해서도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는 목표 설정으로 자신감 있게 대응한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묘하게도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에 의해 논리적으로 부정되는듯한 뉘앙스다. 알다시피 4·19혁명은 독재자 이승만을 하야시킨 민주주의 운동이다. 생략할만한 건 생략하고 소거해버릴만한 건 소거해버린 다른 예와 달리,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는 헌법 전문에서 '대놓고'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이런 뜻은 아닐까. 이승만 정권은 부정당함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의 굳건한 교훈이 되는 첫 페이지인 셈.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자유주의는 마련했는데 민주주의는 부실했던 이승만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다음 정권은 그러지 말라"는 본보기로 전승되는 것이다.

4·19혁명. 국립4·19민주묘지 홈페이지
4·19혁명. 국립4·19민주묘지 홈페이지

▶삼국지에서는 동탁의 집권이 그런 예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하고 옥살이도 했듯이, 실은 동탁도 원래 나라를 위해 힘 쓴 인물이다. 북방 이민족을 토벌하고 반란도 진압하며 활약했다.

문제는 수도 낙양에 입성해 권력을 잡더니 폭정을 하면서부터다. 결국 전국에서 군웅들이 모이더니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한다. 참고로 이 연합군에 유비·관우·장비도 참여하고 조조도 합류하고 손견(손책·손권의 아버지)도 종군한다. 동탁이 없었다면 삼국지도 출발하지 못했을 것.

아무튼 이에 동탁은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후퇴한다. 이후 연의에서도 정사에서도 반동탁연합군이 동탁을 직접 제거하지는 못한 것으로 나온다.(대신 나중에 양아들 여포가 초선 때문에 '알아서' 죽인다.) 하지만 반동탁연합군의 결성이 힘의 구도를 바꾸면서 동탁의 장안 후퇴를 야기했고, 이를 계기로 동탁은 거스를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는 분석이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도 반동탁연합군 같은 게 있었다. 1950년대 들어 이승만의 독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고, 이게 대구 소재 매일신문 최석채 주필의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사설 및 대구 2·28민주운동에 이어 마산 3.15의거를 거쳐 4·19혁명으로 폭발했다는 평가다.

결국 4·19혁명 8일만인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했다. 역사 속 반동탁연합군과 비교해 목표를 직접 달성한 것이고 그 시기도 빨랐다.

매일신문 최석채 주필. 매일신문DB
매일신문 최석채 주필. 매일신문DB

▶동탁 사후 동탁과 닮은 잘못을 되풀이한 군웅은 스스로 황제를 칭한 원술 정도였고, 역시나 일찍 망했다. 조조는 황제를 옹립한 중원에서, 원소는 근거지 하북에서, 손견은 강동으로 가서, 유비는 방랑을 하면서도, 동탁의 과오는 반복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지지를 모으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최근 이승만의 무수한 업적이 재평가 받고 있다. 혼란스럽던 대한민국의 첫 페이지를 맡아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업적을 여럿 쓴 건 사실이다. 분명 인정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독재라는 과오를 저지르면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제헌(헌법 제정) 때 맨 앞에 적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부정해버린 건, 분명 비판 받아야 한다.

비판의 강력한 근거가 있다. (앞에서도 밝힌)헌법 제1조 1항보다 앞에 있는 전문에 적힌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다. 이를 통해 자신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니, 땅 밑에서 불명예라고 생각치 말고 오히려 보람을 느끼면 될 일이다.

그러니 이승만이라는 위인을 기릴 때에도, 이승만이라는 인물만 기리는 건 하수이고, 이승만의 과오를 통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하는 건 고수일 것이다. 진정 국부(國父)로 평가하려면 업적은 물론 과오를 통해서도 교훈을 도출할 줄 알아야 한다.

삼국지를 읽으면 초반부 동탁의 폭정 및 몰락을 먼저 접하게 되고, 이후 나오는 군웅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참고하게 된다. 첫 대통령 이승만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그런 존재다. 이승만이라는 선례가 있음에도 독재를 한 권력자는 역시나 처단됐다.

아직 좀 애매한 사례가 한 명 있기는 하지만.

PS. 동탁은 삼국지의 학살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낙양에서 정권을 잡고는 군대를 끌고 다니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이승만을 평가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전국적으로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 수십만명 국민을 다수 무고한 이유로 학살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 때 대구경북권에서도 경산 코발트탄광 학살 사건과 문경 양민 학살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거창은 경남 지역에 있지만 대구권) 등이 발생했다.

영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 극중 보도연맹 학살.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