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국지] DJ 아들 홍걸, 원소 아들 원상

입력 2020-09-18 20:05:53 수정 2021-12-13 13:30:41

김홍걸(1963~), 원상(187?~207).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김홍걸(1963~), 원상(187?~207).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故(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재임 때 부속실장이자 퇴임 후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2020년 9월 18일 주목 받았다. 옛 '주군'의 아들이자 공교롭게도 같은 당 소속이며 허위 재산신고 등의 논란에 휩싸인 김홍걸 의원에게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해서다. "사퇴하라"는 점잖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 요구가 당일 절반쯤 실현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김홍걸 의원을 제명한 것이다. 비례대표인 김홍걸 의원은 당 제명에 따라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한다. 스스로 탈당을 해야 (다음 비례 순번이 이어받아야 해)의원직을 잃는다.

지난 4·15 총선에서 초선으로 당선된 김홍걸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고 한해는커녕 반년을 지나기도 전에 당 제명 사유가 된 허위 재산신고를 비롯해 부동산 투기 등의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더불어민주당 윤리감찰단의 첫 조사 대상이 됐다. 또 아버지의 정치적 상징인 동교동 사저를 두고 이복형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유산 분쟁을 벌인 사실이 알려져 손가락질도 제법 받았다.

김홍걸 의원은 사실 그럴만한 '싹수'를 보인 바 있다. 2002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금품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노무현 정권 때 사면을 받은 것이다.

DJ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인 김홍걸 의원은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DJ의 정신 내지는 이미지를 계승했다는(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계승할 것이라는) 평가 내지는 기대를 받았다. 앞서 이복형 둘(故 김홍일, 김홍업)도 정치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남은 막내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하지만 각종 논란이 불거진데다 이번에 당이 제명까지 하면서, 김홍걸 의원에게 향했던 호평과 기대감은 점차 사라지는 모습이다. 김한정 의원의 말대로 '김대중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많은 분들의 실망과 원망'이 좀 더 향할 기세고, 언론 보도 댓글들을 살펴보면 "아버지 얼굴에 X칠을 했다"는 코멘트가 눈에 띈다.

원소(?~202). 코에이 삼국지11
원소(?~202). 코에이 삼국지11

▶삼국지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때 하북의 1인자였던 원소와 그의 세 아들 원담, 원희, 원상을 살펴보자.

삼국지연의를 보면 동탁의 폭정에 18로 제후가 연합군을 일으키는데, 여기서 원소가 맹주로 추대된다. 지난 20세기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 시절 DJ의 존재감에 비유할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선대의 존재감은 후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원소는 애초에 원담, 원희, 원상 가운데 막내 원상을 아껴 후계자로 삼았다고 한다.

원씨 3형제의 커리어는 이랬다. 원소의 전성기 때 이미 장성해 있던 원담과 원희는 주자사까지 해봤다.(원담은 청주자사, 원희는 유주자사) 어렸던 원상은 그런 경험 없이 바로 후계자가 됐다. 앞서 장남 故 김홍일이 3선(15·16·17대), 둘째 김홍업이 한차례(17대) 의원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홍걸은 올해 선거가 치러진 21대에야 의원이 됐으니, 비유를 하자면 나이나 경력이나 홍일·홍업과 홍걸의 차이는, 원담·원희와 원상의 차이쯤 되는 셈.

형제끼리 싸운 것도 닮았다. 원소 사후 중심지 기주를 두고 원담과 원상이 전쟁까지 벌이며 다퉜는데, 이 집안 싸움은 아버지가 차지해 물려준 하북을 조조에게 빼앗기는 단초가 된다. 앞서 언급한 홍업·홍걸 형제의 동교동 사저 유산 분쟁을 연상케 한다.

원담(?~205), 원희(177?~207), 원상(187?~207). 코에이 삼국지11
원담(?~205), 원희(177?~207), 원상(187?~207). 코에이 삼국지11

이렇듯 디테일하게 닮았기도, 맥락만 좀 비슷하기도 한 원소 일가와 DJ 일가의 확실한 공통점은 이제 '남은 게 없다'는 것이다.

원소는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대패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만만찮은 전력과 근거지를 갖고 있었다. 이게 세 아들에게 전해졌지만, 확장하기는커녕 수성할 역량도 없는데다 서로 싸우기까지 하며 '다 말아먹었다'.

DJ의 정신과 이미지는 DJ의 퇴임 후에도 또한 사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이어 이번 정권이 후반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치러진 총선에서 혈육인 막내 아들 홍걸이 첫 당선되면서 (당장은 아니겠으나 길게 보면)'계승자'가 되는가 싶었지만, 의원이 된 지 단 몇 달만에 '싹 말아먹으려는' 조짐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PS. 사실 삼국지는 대부분 후대가 선대보다 못났다. 딱 호부견자(虎父犬子, 아비는 범인데 자식은 개)다. 유비가 어렵게 창업한 촉나라를 아들 유선이 자신이 살아있는 당대에 위나라에 헌납한 게 가장 심한 예이고, 원소의 사례도 버금간다. 조조 아들 조비는 괜찮았으나, 조비 아들 조예부터 망조가 보였고, 결국 조예의 양자 조방 다음 조모 다음 조환이 신하였던 사마씨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그나마 손견 다음 손책 다음 (손책의 동생)손권 정도가 선대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