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文대통령의 언어

입력 2020-09-0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어둠의 시간). 윈스턴 처칠은 영국에 닥친 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스마저 나치에 무너지고 유럽에서 외톨이가 된 영국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다. 처칠은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는 명연설로 국민을 통합해 전쟁에서 승리했다. 지도자의 역량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다.

옥포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에게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태산같이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이라고 했다. 위기에 처할수록 더 진중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언어(言語)는 천금(千金)의 무게를 갖는 법이다. 시의적절한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해 위기를 돌파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집단을 공격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지도자의 언어는 위기를 더 키우는 것을 넘어 국가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재확산 와중에 SNS에 올린 의사·간호사 갈라치기 글로 말미암은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다 하다 의사와 간호사까지 편 가른다" "대통령이 (국민) 이간질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는 등의 댓글이 폭주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청와대는 문제의 글을 쓴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비서관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대통령 의중을 잘못 읽은 참모의 잘못'이란 식의 청와대 해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반대로 비서관이 문 대통령 의중을 정확히 읽어 문제의 글을 올린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문 대통령은 집단 휴진한 의사들을 전장을 이탈한 군인에 빗대며 본분을 망각한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서관이 올렸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글이 문 대통령 의중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보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것을 고려하면 열 번을 자르고도 모자랄 비서관을 청와대가 그냥 두는 것 역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조국 사태, 부동산 대란, 한·일 무역 분쟁 등 위기마다 편 가르기와 갈라치기를 워낙 많이 한 정권이어서 의사·간호사 갈라치기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국민을 사분오열시켜 이 나라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가 걱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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