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산책] 위임통치와 김정은의 건강

입력 2020-08-27 16:21:00 수정 2020-08-27 16:53:57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북한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백두산 기념 권총 수여식에서 군 주요 지휘성원들에게 백두산 기념권총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에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시상식 의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북한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백두산 기념 권총 수여식에서 군 주요 지휘성원들에게 백두산 기념권총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에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시상식 의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박지원 국정원장이 지난 20일 국회에 출석하여 김정은이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일부 측근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곧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북한과 같은 수령절대통치 체제하에서는 수령 이외의 사람에게 '통치'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1인이 절대적인 권력을 독점하며 절대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 소련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하고 중국에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의 갈등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2인자를 인정하면 국가적 위험 요소를 키우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후계자 이외의 2인자는 인정하지 않고 후계자도 주로 혈육만 지명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2인자 아니라 2인자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철퇴를 맞게 되어 있다. 장성택을 비롯해서 2인자 비슷한 위치까지 갔던 사람들은 숙청을 피할 수 없었다. 1950년대의 박헌영, 1960년대의 박금철, 1970년대의 김영주 등이 그 대표적 예다. 김정일 시대에 가장 잘나갔던 장성택도 여러 차례의 실각을 경험하기도 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장성택, 이영호, 황병서 등 한국 언론에 의해 2인자 비슷한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숙청되었다. 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다 보니 과거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2인자 견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북한에서 '통치' 행위를 위임한다는 것은 애초에 개념조차 성립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가 자기 업무가 너무 많으면 자기가 직접 하던 일 중에 일부를 밑의 사람에게 하라고 명령할 수는 있다. 이건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지 '통치'를 위임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 '통치'를 위임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과 비슷한 수준의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거나 지위가 공고해진 후계자가 있을 때뿐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김정은에게 특별한 건강 문제는 없고 스트레스 때문에 권한을 위임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받아 핵심 간부들에게 일을 좀 나눠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스트레스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일을 좀 나눠준 것에 불과하다면 5, 6월에 발생한 일들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다. 당시 보도된 "김여정 동지가 대남 사업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 "다음 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 등의 표현은 단순히 업무를 조금 넘겨받는 정도를 많이 넘어섰다. 특히 청년동맹·직업총동맹·여성동맹 등의 대북 전단 항의 군중집회에서 '김여정 동지 담화 낭독'이 이뤄졌고 TV에서도 김여정의 담화 전문을 그대로 읽었다는 것은 북한의 모든 관례를 심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북한처럼 2인자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을 사용하려면 단순한 2인자여서는 안 되고 후계자여야 가능한 것이다. 북한은 수령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철저한 나라여서 친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선을 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에서 김여정이 김정은을 얼마나 깍듯하게 섬기는가 하는 것을 본다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런 북한에서 이런 표현들이 나왔다는 것은 절대 우연적인 일일 수 없고 일시적인 실수일 수도 없다. 이런 문제는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당 관계자든 신문 방송 관계자든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북한이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했다고 볼 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 젊은 김정은이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하게 되면 국내외적으로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혼란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명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지명하지 않고 정치국이나 정치국 상무위원들만 공유하는 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난 5, 6월에 했던 것과 같은 보도들과 집회들은 중간 간부들에게도 '유사시에는 김여정이 후계자구나'라는 것을 암시하는 효과를 주었다고 본다.

문제는 '왜?'다. 국정원은 김정은에게 건강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건강 문제가 없다면 과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국정원이 '위임통치'라는 말을 만들어내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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