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양광 시설 개발로 나무 베어내…비 오면 토사 '줄줄줄'

입력 2020-08-11 18:35:41 수정 2020-08-11 19:46:06

산사태 부르는 '태양광 시설'…민가·농장·도로 위협 초긴장
봉화서 유실 토사 축사 덮쳐…비닐막 임시 처방·소들 대피
복구 더뎌 파손된 상태 방치…성주·고령·칠곡도 유사 사례
청도선 옹벽 붕괴 2년여 방치

경북 봉화군 물야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사면의 토사 유실로 축사가 무너졌다. 축사 주인 정태운 씨가 유실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영민 기자
경북 봉화군 물야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사면의 토사 유실로 축사가 무너졌다. 축사 주인 정태운 씨가 유실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영민 기자

애물단지로 전락한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올해 장마철 폭우로 산사태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민가나 농장, 도로 인근에 설치된 경우에는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축사 파고 든 '태양광 토사'

11일 경북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사면 유실 현장. 지난 6일 낮 12시 45분쯤 무너져 내린 이곳은 닷새가 지난 현재까지도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당시의 아찔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토사가 흘러내린 약 3천㎡ 사면에는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파란 비닐막이 덮였다. 사면 아래 대형 축사는 유실된 토사로 일부가 파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소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른 추가 피해 등을 우려해 이웃 축사로 옮겨졌다.

축사 주인 정태운(61) 씨는 "사고가 발생한 6일 오전 9시쯤부터 토사 일부가 흘러내려 걱정했는데 결국 점심 때쯤 태양광 발전시설 아래 사면의 토사가 축사를 덮쳤다"고 설명했다.

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기 전 이곳에는 나무가 우거져 산사태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다. 태양광 발전시설 개발로 나무를 다 베어내 산사태가 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현장. 시설 설치를 위해 토목공사가 진행되던 현장에서 토사가 유실돼 인근 도로와 인삼밭을 덮쳤다. 현재는 임시로 복구작업이 이뤄진 상태다. 윤영민 기자
경북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현장. 시설 설치를 위해 토목공사가 진행되던 현장에서 토사가 유실돼 인근 도로와 인삼밭을 덮쳤다. 현재는 임시로 복구작업이 이뤄진 상태다. 윤영민 기자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의 상황도 물야면 사고 현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지난 2일 오전 6시 30분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를 위한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산지의 토사가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초를 다지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보니 나무는 이미 다 뽑힌 상태였고 대부분 흙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야면 사고 현장과 마찬가지로 유실된 토사가 인근 도로와 도로 건너편 인삼밭 일부를 덮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지금은 차량 통행을 위해 도로 위 토사가 대부분 치워진 상태이지만 일부는 남아 있어 흙투성이였다.

마을 한 주민은 "'동내에 산사태가 났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 현장을 떠올렸다. 폭우가 내리는 도중 공사 현장 흙이 도로로 조금씩 나오길래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차량 속도를 더 낸 채 지나갔다"고 했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봉평리 태양광 발전시설 축대 일부가 최근 내린 비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무너져내렸다. 성주군 제공
경북 성주군 초전면 봉평리 태양광 발전시설 축대 일부가 최근 내린 비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무너져내렸다. 성주군 제공

◆폭우에 축대도 속수무책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야산에서도 지난 4일 태양광 발전시설 부지 내 사면 토사가 유실됐다. 성주군에 따르면 이 발전소의 토사 유실은 7월 말 성주에 내린 470㎜의 비로 지반이 약해진 게 원인이 됐다.

성주군 측은 설치업체에 복구를 요청하는 한편 무너진 단면을 비닐로 씌워 추가 토사 유실을 방지하고 있다. 성주군 관계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된 곳 대부분은 경사가 심한 야산이다. 적은 비에도 산사태 등 위험을 안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고령군에서도 지난달 23일 내린 폭우로 운수면 봉평리 임야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7천400㎡ 가운데 토사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태양광모듈(판)을 설치하기 위해 조성한 높이 4m, 길이 20m의 축조블록이 폭우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고령군 역시 설치업체에 복구명령을 내리고 토사가 흘러내린 곳에서 더 큰 산사태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 등으로 임시처방을 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할 때 양쪽으로 폭우에 대비한 큰 수로를 묻고 하단에 축대만 제대로 쌓으면 웬만한 폭우에도 견딜수 있을 것"이라며 "비용을 아끼려고 충분한 시설을 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한 태양광 발전시설 아랫 부분에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비닐이 덮여 있다. 독자 제공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한 태양광 발전시설 아랫 부분에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비닐이 덮여 있다. 독자 제공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모 태양광 발전시설의 경우 토사 유출 우려 때문에 아랫부분 일부를 급히 비닐로 덮었다. 다행히 이번 장마로 산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면 경사가 평균 22도(산지관리법은 25도까지 허용) 정도로 가팔라 평상시에도 토사 유출의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천면 한 주민은 "칠곡도 비가 500㎜ 이상 오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산사태가 발생하기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1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태양광 발전시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H빔을 설치한 뒤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노진규 기자
11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태양광 발전시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H빔을 설치한 뒤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노진규 기자

◆붕괴 후 복구도 만만찮아

지난 2018년, 2019년 장마와 태풍으로 두 차례나 옹벽이 붕괴된 청도군 풍각면 한 태양광 발전시설은 사고 2년이 지나도록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18년 6월 장마 때 옹벽 일부가 붕괴된 해당 태양광 발전시설은 업체가 제때 복구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1년 넘게 방치했다. 결국 지난해 7월 태풍 '다나스' 때 집중호우로 토사가 유출되면서 북쪽 사면 20여m 구간이 추가로 붕괴됐다.

11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태양광 발전 시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H빔을 설치하고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노진규 기자
11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태양광 발전 시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H빔을 설치하고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노진규 기자

청도군 관계자는 "복구명령을 내리자 공기 연장 요청을 수차례 냈다. 업체의 자금 사정으로 공사가 늦어진 것으로 안다"면서 "전문가에게 복구 공법을 조언받아 이번 장마가 끝나면 본격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업체가 지난 6월 9억원대의 복구비를 예치했고 산림청과 전문 기술자 자문을 받아 설계공법 변경도 완료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설계감리에 이어 공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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