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더 킹:영원의 군주’ 시청률 부진

입력 2020-05-14 17:30:00

달달했던 김은숙 드라마가 답답해졌다

SBS 드라마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스틸컷

최근 내놓는 드라마마다 성공시킨 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는 그만한 기대감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것일까.

◆평행세계로 돌아온 '더 킹'

김은숙 작가는 최근 이른바 3부작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을 연거푸 성공시켰다. 모두 대작인 데다 김은숙표 멜로가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으로 거둔 성취인지라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래서 신작 '더 킹'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첫 회부터 11.4%(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낸 건 그 기대감의 반증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평행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납득되지 못했고, 백마 타고 등장한 황제는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본래 김은숙표 판타지는 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소 황당한 설정조차 달달한 멜로와 귀에 콕 박히는 시적인 대사들로 믿고 싶은 세계를 그려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 '더 킹'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그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낯선 데다, 멜로 또한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난항을 겪게 됐다. 이런 반응들을 시청률은 고스란히 반영했다. 조금씩 빠지더니 8.1%까지 추락한 것.

SBS 드라마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스틸컷

물론 '더 킹'이 그려내는 평행세계는 흥미로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마치 장기 말처럼 이리저리 배치함으로써 두 세계를 모두 장악하려는 이림(이정진)과 이러한 세계의 교란과 혼돈을 막으려는 이곤(이민호)과 정태을(김고은)의 대결은 흥미롭다. 특히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유혹해 저 편 다른 세계에 있는 도플갱어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려는 이림의 야망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마력을 보여준다. 이림이 가진 야망과 큰 그림은 그래서 '더 킹'의 평행세계라는 세계관에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와 맞서는 이곤과 정태을의 세계를 뛰어넘는 공조(?)와 멜로가 정당성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색다른 세계관을 가져오면서 너무 익숙한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설정들을 초반에 많이 배치한 건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낯선 세계에 좀 더 정면으로 부딪쳐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구사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 색다른 세계관을 가진 작품 역시 그런 뻔한 멜로가 아닌가 하는 오인을 불러 일으켰고, 그 멜로 또한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드라마는 폭넓은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멜로 빼놓고 보면 독특한 세계관의 도전이 보인다

사실 김은숙 작가와 멜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인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그리고 '연인'이라는 이른바 '연인 3부작'은 김은숙 작가를 멜로 장인이라는 지칭으로 불리게 했다. 그 후에도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김은숙 작가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주로 담는 멜로를 계속 그려왔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던 김은숙 작가가 최근 쓴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은 그의 멜로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진화함으로써 그의 진가를 드러냈다. 즉 '태양의 후예'를 통해 의학드라마, 액션, 재난 같은 다양한 장르들을 실험했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는 문학적인 서사를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시도했으며,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SBS 드라마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스틸컷

그래서 이번 작품인 '더 킹'에서도 평행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그의 멜로와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가 궁금했던 지점이었다. 하지만 평행세계라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그려내면서 거기 얹어진 멜로가 이미 '연인' 시리즈와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에서 흔히 활용되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한계로 지목되었다. 즉 모두가 기대하는 멜로의 구도가 그리 신선하지 못했고 나아가 지금의 젠더 감수성에도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발목을 잡은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멜로를 빼놓고 보면 '더 킹'은 마치 해외 SF 판타지 드라마의 세계관을 가져온 듯한 신선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0과 1의 세계를 넘나들며' 두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이림과 그 질서를 지켜내려는 이곤의 대결이 벌어지고 그래서 과연 누가 영원(0과 1)의 군주가 될 것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차라리 멜로를 넣지 않고 장르의 묘미를 극대화했거나, 멜로를 넣는다면 이 색다른 세계관에 맞는 색다른 멜로를 구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어쩌면 김은숙 작가 역시 두 개의 세계에서 갈등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늘 그려왔던 익숙한 멜로의 세계와 지금의 트렌드가 요구하는 색다른 장르의 세계 사이에서. 그 두 개의 세계를 모두 섭렵해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맞는 균형점을 내놓는 건, 어쩌면 0과 1 두 세계를 평정해 영원의 군주가 되는 일만큼 어렵다는 걸 '더 킹'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절감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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