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환의 같이&따로] “우리 모두 잘 해왔습니다.”

입력 2020-04-29 17:3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쓴 '황무지'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라일락이 피는 4월의 피폐해진 현실을 보면서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땅의 황폐화를 의미하기보다는 전쟁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에게도 2020년 4월은 잔인한 4월이었고 황무지와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예년에 비해 강추위 한번 없이 따뜻했던 지난겨울, 우리는 꽃피는 봄을 기대하면서 가족과 함께 설 연휴를 보냈다. 하지만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유난히 길고도 힘들었던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1월 말 중국 우한에서 폐렴 질병이 유행한다고 할 때 이것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인지도, 우리 사회와 전 세계에 이렇듯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에 공포심과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급속도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대구는 바이러스의 근원지처럼 주목받았고 모든 일상들이 차단되었다. 마치 대한민국의 외딴섬처럼 대구는 인식되고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이었지만, 대구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에 잘 따랐다.

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15일간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다시 4월 19일까지 2주간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현재의 생활방역까지 3개월 동안의 길고 긴 시간을 잘 견디어왔다. 정부의 신속한 정보 공개 및 방역대책 덕분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남의 일처럼 여기던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이 이제는 우리의 대응에 대해 칭찬하며 벤치마킹하고 있다.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차분한 시민들의 대응은 어려운 위기를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정부의 대응도 적절했지만, 대구 시민의 높은 시민의식도 코로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길고 길었던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되고 이제는 조금씩 우리의 일상생활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종교 행사, 도서관 및 공공시설의 이용, 각종 공인시험도 지난 주말부터 재개되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를 맞아 강원도와 제주도의 숙박시설은 코로나 이전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잔인하게 시작된 봄이었지만 개나리, 목련, 벚꽃은 우리에게 봄이 왔음을 알렸고, 만개한 라일락은 꽃향기를 통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명은 태어나고 자연의 생기는 여전히 지속되듯이 우리의 일상도 이제는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내일은 5월의 첫날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시작된다. 이번 주말 기온이 최고 29℃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보를 접하니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한참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던 시점에,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약화되어 코로나 전염병이 종식될 것이라는 뉴스가 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의 코로나 발병 사례를 볼 때, 기온 상승에 따른 코로나바이러스 소멸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비합리적인 생각마저 드는 것은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한때 고립된 지역으로 전 세계가 주목했던 대구에서 우리는 잔인한 봄을 잘 이겨내고 버텨 왔다.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고 쓰면서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도 생명을 얘기하면서 희망을 던지고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봄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아직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온전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잘 이겨낸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자. "우리 모두 잘 해왔습니다."

4월의 마지막 날에 5월은 싱그럽게, 활기차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따뜻한 춘풍 속에서 신선한 향기를 흩날리는 라일락꽃의 싱그러움을 맛볼 수 있는 5월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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