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처음 탄생한 찰보리빵은 어떤 맛일까?

입력 2020-04-22 12:03:26

가장 먼저 탄생한 집이라는 의미로 공갈 젖꼭지를 썼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가장 먼저 탄생한 집이라는 의미로 공갈 젖꼭지를 썼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경주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빵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신데 필자의 책을 읽고 한번 뵙고 싶다는 전화였다. 빵집 광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빵이라는 주제는 단어의 어감도 재미있고 기발하게 만들만한 거리가 많은 주제였다.

미팅 날, 경주에서 필자의 사무실까지 오신 사장님은 지극히 평범함 50대 아저씨셨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큰 반전이 있었다. 그 사장님이 바로 경주 찰보리빵을 최초로 개발하신 분이셨다.

경주하면 찰보리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경주 시내를 5분만 운전해도 숱한 찰보리 빵집을 볼 수 있다. 사장님이 가져오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 최초로 개발한 찰보리빵을 남들이 따라 하면서 원조의 개념이 퇴색한 것이다.

필자는 'OOO 찰보리빵'이 그 원조라는 것을 광고에서 강하게 어필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분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경쟁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말자는 말씀이었다. 순간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역시 많은 매장을 운영하시는 데에는 그만큼 넓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필자에게 더 어려운 숙제를 주신 셈이다. 경쟁자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으면서도 원조의 느낌을 줘야 했으니까. 대구로 돌아온 뒤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필자의 경험상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을 닮아간다. 그리고 광고 역시 그 광고주를 닮은 작품이 나온다. 작업하며 염려는 되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 사장님을 꼭 닮은 착한 광고가 나올 것 같았다.

광고 작업 중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필자가 찰보리빵 광고를 맡은 걸 알고 온하우스의 신세원 대표님께서 연락이 왔다.

"소장님이 찰보리빵 광고 맡은 걸 알고 경주 가서 사 먹으려고 했는데요. 찰보리 빵집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못 찾겠더라고요. 결국, 아무 찰보리빵 집에 들어가서 하나 사 먹고 나왔어요"

원조라는 워딩을 쓰지 않고 원조를 알리고자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원조라는 워딩을 쓰지 않고 원조를 알리고자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이것이 'OOO 찰보리빵'의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리 광고해도 브랜딩 되지 않으면 광고비는 허사인 셈이니까. 그래서 필자는 20년 가까이 써온 로고를 다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기존에 써오신 '찰보리빵 발명한 집'이라는 슬로건 역시 손을 봤다. '발명'이라는 단어는 왠지 제품 같은 딱딱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탄생'이라는 워딩을 써서 생명의 이미지를 줬다. 탄생이 발명보다 훨씬 고결하고 축복 된 느낌을 준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문제는 원조에 대한 인식이었다. 사실 '원조'라는 워딩은 식상하다. 춘천에만 가도 간판에 원조가 들어가지 않는 닭갈비 집이 없을 정도다. 원조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어떻게 원조인 것을 알리느냐가 문제였다. 거기에 사장님의 경쟁자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해달라는 요청까지 있었으니 더욱 풀기 힘든 문제였다.

찰보리빵을 만나는 그 순간에 강력한 메시지를 줘서 원조임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사람들은 찰보리빵을 만지기 전에 패키지를 먼저 만지게 된다. 패키지를 먼저 보고 열어보고 비로소 찰보리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탄생한 찰보리빵은 어떤 맛일까?'라는 카피를 패키지에서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패키지 박스를 열면 또 하나의 재미를 만나게 된다. '탄생'이라는 워딩을 써서 생명력을 부여했으니 가계도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OO 사장님(아빠)을 필두로 7개의 매장을 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찰보리빵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식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단 의미로 가계도를 개발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단 의미로 가계도를 개발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거기에 더해 트레이싱지에 돌잔치 사진을 넣어두었다. 보통 우리가 돌잔치 사진을 찍을 때 의자에 앉아서 찍는데 아이 대신 찰보리빵을 앉혀둔 것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아! 여기 사장님이 찰보리빵을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는구나!' '그럼 하나를 만들어도 허투루 만들지 않겠네!' 이런 생각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그니처 이미지 하나가 필요했다. 찰보리빵에 공갈 젖꼭지를 물리는 이미지였다. 찰보리빵은 동그랗게 아이의 얼굴처럼 생겼다. 거기에 공갈 젖꼭지를 물리니 정말 생명이 탄생한 듯한 느낌이 났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우리는 시장이라는 전쟁터로 나갔다. 더 예뻐진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니 팔리기 시작했다. 경주에 찰보리빵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불태워버렸다. 원조를 말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이 눈치채게 했다.

팔고 싶다면 진실을 말하라. 거기다 경쟁자까지 배려해주는 마음은 덤이다. 그렇게 브랜드는 팔려간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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