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유권자의 딜레마

입력 2020-04-13 20:15:44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에게 변론술을 배우던 율라투스는 수강료를 낼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는 첫 소송에서 승소하면 수강료를 지불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변론술을 다 배운 제자가 돈을 내지 않자 프로타고라스는 소송을 제기했다. 율라투스는 재판에서 이기면 첫 승소에 따라 수강료를 내야 하고, 재판에서 져도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온기가 절실해서 모였지만 더 이상 다가설 수 없었다. 몸에 달린 바늘이 서로를 찔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위가 다시 서로를 불렀고 통증이 서로를 또 갈라놓았다. 그렇게 불가근불가원의 간격이 생긴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남긴 우화이다. 오늘날 코로나 전염병 시국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떠올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청나라의 대군에 포위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모진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조정의 의견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인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론과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론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국운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이른바 부정적 딜레마의 전형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마찬가지이다. 이래도 망조(亡兆)이고 저래도 망조이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길뿐이다. 이 또한 아니란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해야 한다. '똥 묻은 O' '겨 묻은 X' 날뛰는 선거판이 국민들에게 또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꿩을 못 먹으면 알이라도 먹을 수 있는 선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정을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람을 보고 찍자니 나라가 울상이다.

'에라~ 투표고 나발이고 놀러나 가자'는 생각도 든다. 바꾼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과 윤리가 짓밟히고 '방귀 뀐 놈이 되레 큰소리치는' 세상을 방관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에 국운이 걸렸다고 한다. 특정 정당과 정권의 승패 그 이상이다. 선택은 개개인의 자유이지만, 그 결과가 초래할 국가 흥망의 기로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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