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 대구 화원동산 수리부엉이 '육아 몸살'

입력 2020-04-13 15:47:48 수정 2020-04-13 20:04:44

탐방객 잡담·휴대폰 노래·반려견 '소음 스트레스'

지난 3일 오후 어둠이 찾아오자 둥지로 돌아 온 수리부엉이 어미(오른쪽)가 잔뜩 경계한 눈빛으로 사냥한 비둘기 먹이를 물고 은신처에 숨겨놓은 새끼를 불러내고 있다. 이날 수리부엉이 가족은 사람들의 잡담·휴대폰 노래·반려견 짓는 소리에 종일 은신처에 머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난 3일 오후 어둠이 찾아오자 둥지로 돌아 온 수리부엉이 어미(오른쪽)가 잔뜩 경계한 눈빛으로 사냥한 비둘기 먹이를 물고 은신처에 숨겨놓은 새끼를 불러내고 있다. 이날 수리부엉이 가족은 사람들의 잡담·휴대폰 노래·반려견 짓는 소리에 종일 은신처에 머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대구 화원동산 번식지에서 육아가 한창인 수리부엉이 가족이 방문객들의 소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천연기념물(324호)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가 새끼 2마리를 키우고 있는 곳은 수상 탐방로와 인접한 하식애(절벽). 지난 3일 수상 탐방로에는 산책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해질녘까지 이어졌다. 거기다가 전국에서 몰려온 사진작가들도 삼각대를 받쳐 놓고 종일 진을 쳤다.

둥지 위 은신처에 숨어있던 새끼 수리부엉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오후 7시쯤 얼굴을 내밀며 둥지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둥지 위 은신처에 숨어있던 새끼 수리부엉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오후 7시쯤 얼굴을 내밀며 둥지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둥지에서 수상 탐방로는 사람들의 표정마저 빤히 내려다보이는 20m 남짓한 거리. 사진작가들의 잡담과 탐방객의 휴대폰 노래, 반려견 짓는 소리가 곧장 절벽을 타고 부엉이 둥지를 때렸다. 소음에 놀란 어미는 새끼를 둥지 위쪽 숲이 우거진 은신처로 숨겨놓고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어둠이 내려서야 멀리서 지켜보던 어미가 둥지로 돌아왔다. 전날 사냥해 숨겨둔 비둘기 먹이로 새끼를 불러내 배를 채우게 했다. 어둠속에 재회한 어미와 새끼 모두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천혜의 요새였던 화원동산 부엉이 번식지가 2년 전 수상 생태탐방로 설치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낮시간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둥지를 떠나 있던 수리부엉이가 해질무렵 둥지 근처로 날아오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낮시간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둥지를 떠나 있던 수리부엉이가 해질무렵 둥지 근처로 날아오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이곳에는 수리부엉이 외에도 칡부엉이, 참매, 큰말똥가리, 황조롱이, 삵, 황구렁이 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물이 서식하며 번식 중이다.

수리부엉이 가족에게 '사람' 은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올해 둥지를 지난해 보다 탐방로에서 더 먼 곳으로, 더 가파른 절벽으로 옮겨 온 이유다. 번식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수리부엉이는 화원동산을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전문가들은 수리부엉이가 최상위 포식자로 인근 달성습지 생태계 조절자 역할을 하며 새끼를 무사히 키울 수 있도록 탐방객의 세심한 배려와 당국의 효율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초저녁에 새끼에게 먹이를 준 수리부엉이가 인근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를 돌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초저녁에 새끼에게 먹이를 준 수리부엉이가 인근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를 돌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탐방로를 관리하는 달성군 시설관리공단측은 부엉이 서식 안내문이 방문객의 관심을 불러 역효과가 우려돼 철거했다가 지난 8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하여 쉿! 조용히 산책해 주세요' 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다시 걸고 방문객의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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