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일상의 내밀한 아카이브

입력 2020-04-13 14:13:21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일기는 일상 속 나만의 기록이다. 하루 일상과 그 감정들을 마무리하여 쓴 오롯한 개인 아카이브 기록지라 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이며 내밀하지만 지위와 명성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일기가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난중일기' '안네의 일기'가 그 대표적 사례다.

난중일기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 1일부터 노량해전으로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쓴 친필 일기다.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군사령관의 일기로 교전 상황과 전술, 상세한 하루의 날씨, 전장의 지형 그리고 서민 생활상까지 기록하였다. 수사(修辭) 없이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저로 꼽힌다.

안네의 일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유태계 소녀 안네 프랑크가 독일 점령군을 피해 2년간 은신하면서 쓴 기록이다.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키티(Dear Kitty)라 부르며 전쟁과 은거의 불안 그리고 사춘기 소녀의 풋풋한 성장 과정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생생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나중에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오토 프랑크)가 펴내고 전세계에 공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모든 기록은 당대의 시대상과 가치관, 보편성을 보여준다. 늘 머리맡에 두는 책처럼 가끔 짬이 날 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난중일기나 안네의 일기는 누구에게나 무리 없이 읽힘에 그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내쳐서 다른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기록도 왕왕 발견한다.

'역사 앞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사학과 김성칠 교수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쓴 기록이다. 해방 후 서울의 면면과 한국전쟁의 발발, 인민군 점령시기의 서울 생활, 9.28 수복 등 당시의 전쟁 상황과 생활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당시 공적문서 기록에는 볼 수 없으나 개인의 전쟁 실생활을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 그려놓은 것이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버금가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내게 주었다.

또 같은 시기에 씌여진 이목우 기자의 '시대풍'은 취재 후일담 형태의 일지형식 기록문인데, 지난 8년간 대구문학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뜻밖의 신선한 기쁨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대구 향촌동의 모습과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구상, 이중섭 등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어 무엇보다 애잔한 마음이 일었다.

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이 지쳐가는 상황이다. 성웅 이순신처럼 또는 안네 프랑크처럼 고통스러운 이 전염병의 나날들을 누군가는 '코로나 일기'로 써 내려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같이 겪지만 각자 다른 상황의 전투 같은 이 날들을 말 그대로 기록으로, 아카이브로 볼 수 있는 날을 생각해 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