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철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4월 10일, 대구의 숫자 "0" -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후 거의 두 달만에…. 이제 최악은 벗어난 듯하지만 언제 또 다른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이, 우리 상황이 통제되는 요인으로 의료체계-의료진의 우수성, IT 인프라, 시민의식 등에 더하여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의 운영을 꼽는다. 그런데 이는 대구-서울에서 밀라노-뉴욕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많은 대학이 온라인 강의, 의료진 봉사, 연구의 기여 외에 앞으로도 더 역할을 맡을 영역일지도 모른다.
2월 이후 중국과 신천지를 발원으로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일일 700명 이상까지 늘어나던 때, 덜 급한 환자들이 병상을 선점하면서 정작 위중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게다가 실수, 시행착오, 자원부족이 이어졌다. '생활치료센터'는 기존의 법규와 관행을 넘어 급박한 현장 감각에서 탄생한 대구발 아이디어로, 경증환자를 호텔/기업연수원 등으로 옮겨 의료진의 도움을 받게 한 것인데, 시작하자마자 수요가 넘쳐 대구 바깥의 연수시설까지 힘들게 확보해야 했다. 적정한 격리 공간, 접근성, 지원시설, 와이파이까지 갖춘 비상의료용 집단 수용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 대학의 기숙사는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이 된다.
3월 초 어지럽던 상황, 대구시장이 경북대 총장에게 약 400명의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캠퍼스 내 기숙사를 제공해 주도록 급히 요청했다. 넉넉한 논의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학생회, 교수회도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고 실제로 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캠퍼스 감염의 위험성을 들며 반대하였다. 시장이 직접 학생들을 찾아와 만나기도 했다. 결국 "지역이 없으면 대학도 없다"는 대의 앞에 경북대가 요청을 받아들였고, 당일 한밤중에 환자들이 급히 이송되었다. 의료진과는 별도로 대학 측은 주말에도 긴급 상황실 운영 등 엄중 관리하였으며, 학생회에서도 직접 환자 봉사활동까지 아끼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3주간 큰 사고 없이 환자의 약 80%가 완치되면서 이제는 모두가 퇴소하고 방역까지 끝났다. 경북대 생활치료센터는 대학기숙사가 의료시설로 전환된 최초·최대의 공간으로, 앞으로 다시 필요없기를 바라는 사례이기도 하다.
뒤늦게 최악의 위기를 맞은 미국 북동부가 비슷한 상황이다. 제일 심한 곳은 물론 뉴욕으로 컨벤션 센터와 해군 병원선까지 동원해도 어림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버몬트의 미들베리대, 뉴욕의 NYU, 기타 몇몇 주립대 등에서 캠퍼스에 환자를 이미 받아들였거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매사추세츠의 터프츠대 총장은 일찌감치 <보스턴 글로브> 칼럼에서 자신이 모범을 보일 테니 다른 학교도 함께 하자고 공개 요청하며 논쟁을 선도하였다.

반면, 예일대는 최근 초명문 이미지에 크게 손상을 입었다. 뉴헤이븐 시장이 예일 총장에게, 최일선 전염병 대응집단(first responders)인 의료진, 소방관 등 150명분의 숙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숙사 학생들의 짐 치우는 작업 등이 오래 걸린다면서 어려움을 얘기하며 1백만 달러 기부 등을 제의했는데, 뉴헤이븐 시장이 발끈하여 대놓고 모교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동네의 뉴헤이븐 대학으로부터는 "5분 만에" 수용 답변을 받아낸 것도 대조가 되었다. 지역신문 <뉴헤이븐 레지스터>와 <예일대신문> 등에서까지 비판이 이어지면서, 결국 이틀 만에 당초 요청의 2배인 기숙사 공간을 내놓겠다고 예일대가 밝혔다. 돈과 브랜드로 될 일이 있지만, 꼭 필요한 때는 몸으로도 값하고 희생을 견뎌야 할 터이다. 상아탑 보호와 지역사회 봉사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 일각의 불길한 전망대로 제2차 대확산으로 수도권 등 전국에서 환자가 다시 폭증한다면, 우리 사회와 대학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준비해야 한다.
이시철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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