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제작·음원 스트리밍 등 출연자 ‘덕질’에 올인
대중문화 소비계층, 10대에서 40~60대로 이동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 씻어내리는 데도 한몫
코로나19로 인해 지쳐있던 안방에 생기를 불어넣은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 프로그램 방영이 끝난 뒤에도 출연자 개개인에 대한 팬덤 열풍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특히 이러한 활동을 이끄는 주체가 40대 이상 여성인 '엄마팬'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스타의 얼굴을 담은 스카프, 컵 등 굿즈 제작부터 하루에도 수백곡에 달하는 음원사이트 스트리밍까지 그야말로 '열정 만수르'(열정 부자)가 따로 없다.

◆함께 관심사 공유 '삶의 활력소'
"솔직히 이 나이에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아니고서 할 말이 뭐 있겠어요. 그런 대화들은 스트레스만 받는데, 여기서는 오로지 우리 '웅이' 얘기만 할 수 있으니 참 좋아요. 웃으며 얘기하다보면 시간 가는줄 몰라요."
지난 27일, 대구 팔공산 자락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우리 웅이'를 입 밖으로 꺼낼 땐 꼭 소녀처럼 수줍은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모두 올 1월까지만 해도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2월 초 구경희(40) 씨가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의 다음 공식팬카페 '영웅시대' 경북·대구 게시판에 미스터트롯 4차 방청을 함께 신청하자며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방청은 무산됐지만, 카카오톡 채팅방에 옹기종기 모여 웅이 얘기를 나누는 '랜선 친구'가 됐다. 그렇게 인연이 된 16명 중, 이날 7명이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걸쭉하고 기교가 많은 기존의 트로트와 달리, 감성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발라드풍의 트로트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그게 웅이가 부르는 트로트의 큰 매력이예요. 30대인 큰아들도 트로트를 듣게됐을만큼, 세대를 어우르는 장르로 발전시킨 역할을 한 셈이죠."
임영웅의 팬이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정옥선(56) 씨가 이렇게 답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영웅은 목소리부터가 '고급지다'. 때문에 가사가 더욱 가슴에 와닿고, 공감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도 입을 모았다. 나영아(49) 씨는 "23년간 자영업을 해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비싼 점포세를 감당하기도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건 노래 덕분이었다. 비록 매출이 예년의 20% 수준만 겨우 채우고 있지만, 마음의 충족은 200%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구경희 씨는 "웨딩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나도 죽을 쑤긴 마찬가지다. 적어도 5월 중순까지 거의 모든 예약이 취소됐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재택근무로 집에만 갇혀있으니 평소 같았으면 가족들과도 마찰이 있었을텐데, 웅이 영상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엄마가 늘 즐거우니, 집안 분위기가 화목하더라"며 웃었다.
김미경(58) 씨는 온라인 상으로 함께 하는 '덕질'이 활력소이자 힐링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운동이나 문화생활을 못하는데도, 하루가 지루한 줄 모르겠어요. 뭔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가 있어도 이렇게 팬클럽 활동을 하진 않았는데, 남편이 신기해하고 질투도 하더라고요. 특히 소속감의 힘을 크게 느껴요. 함께 웅이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내 안의 열정이 더욱 커지는 느낌입니다."

이들 모임 구성원 16명의 연령대는 40~60대. 김정숙(47) 씨는 "가장 나이가 많은 65세 언니에게는 팬카페에 글을 올리는 방법, 방송 투표 방법 등을 알려주기도 했다"며 "꼭 나이가 같아서가 아니라,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면서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송은정(51) 씨는 "이 나이에 집중하는 대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하지만 앞에 나서서 활동하기 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그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하려한다. 기부에 이어 봉사활동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이경희(58) 씨도 "트로트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우연히 임영웅이 부른 '바램' 노래를 들으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17년간 배우 이동건 팬카페에서 활동하던 내가 임영웅 팬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며 "미스터트롯 전국투어 콘서트를 이미 6곳이나 예매해놨다. 3개월간 큰 위로를 받았고, 인생의 새로운 활력을 만난 것 같다. 지금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팬덤 경험한 세대, 트로트 매력에 푹
실제로 팬카페 회원의 대부분은 40대 이상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선(善)인 영탁의 네이버 팬카페 '제로탁'은 우수 활동회원 376명 중 289명(76.9%)이 40대 이상이다.
제로탁 카페 매니저(닉네임 제로)는 "40대 이상의 경우 대체로 10, 20대 때 팬덤을 경험한 분들이 많다"며 "삶의 재미를 찾지 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팬카페에 들른 후, 하루종일 카페에 머물며 활기를 찾는다는 글을 자주 본다"고 했다.
이어 "젊은 세대의 트로트 가수가 주는 매력과 더불어 트로트 음악 자체가 젊어진 것이 가장 큰 영향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중장년층 여성 팬덤층이 늘어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활력을 주고 다양성을 넓히는 좋은 현상이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미스터트롯 미(美)인 이찬원의 다음 공식팬카페 '원하트' 카페지기(닉네임 김씨마님)도 "'트로트는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없애는 데에 미스터트롯이 한몫했다는 생각"이라며 "코로나19로 집에 갇혀 답답한 마음이거나, 갱년기를 보내던 이들에게 호소력 깊은 뻥 뚫린 창법이 가슴을 울린게 아닌가 싶다. 회원 분들이 활기차고 긍정적인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젊은층 못지 않게 활발하다. 원하트는 이찬원 씨 부모님이 운영하는 달서구의 막창가게 앞에 응원 화환과 배너, 현수막 등을 장식했다. 이들은 앞으로 굿즈 제작, 판매에도 나설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미스터트롯 전국투어 콘서트 현장에서의 밥차·음료차·간식차 지원, 현수막 장식, 쌀화환 장식 등의 응원 활동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여유 있는 중장년층, 문화 주 소비계층으로
이같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분석한다.
첫째, 문화 주체의 변화다. 중·고등학생 위주였던 대중문화 소비계층이 40~60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특히 예전과 달리 청소년들의 학업, 취업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 중장년층이 대중문화 핵심 소비계층으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며, TV 시청과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늘어난 것도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둘째, 문화 객체가 이들의 취향을 겨냥했다는 것.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의 면면을 보면 '엄마들이 사위 삼고 싶은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어른들이 바라볼 때 전형적인 바른 자녀의 모습을 지녔기에,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시대적 상황의 영향도 한몫했다. 최근 2개월여간 코로나19로 인해 갇혀진 일상 속에 스트레스를 씻어내릴만한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그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 있었다는 것.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현실을 잊을만큼 흥이 나고, 때로는 아픔을 씻어주는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위 세가지의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 것이 미스터트롯 인기 급상승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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