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보다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예술가의 삶은 참 고달픕니다. 사회적 활동도 해야 하고 가족도 먹여 살려야 하죠. 이 때문에 예술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위를 산 위로 계속 굴려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술가는 지난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시지프스와 닮아 있습니다."
꽁지머리를 하고 콧수염을 길렀지만 마른 체격의 김결수(56)는 평면 예술과 설치 미술에 심지어 미디어 장르까지 넘나드는 현대미술가이다.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84학번)를 나와 대구에서 30년째 오롯이 작가의 길을 걷는 그의 예술론은 "예술은 곧 노동"이라는 귀결점에 닿아 있다.
김결수는 작가 생애 중 세 번째로 지난해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들녘에 464㎡ 창고형 작업실에 둥지를 틀었다. 천장이 3m가 넘는 그의 작업실에는 200호짜리 대작 위주의 평면 및 반입체 평면 작품과 설치미술에 쓸 다양한 오브제, 즉 타다 남은 장작, 바지선, 어른 키만한 통나무, 각종 전기도구, 물감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대학시절부터 해외화집을 뒤적이고 서울의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며 현대미술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점차 미술에서 추상적인 요소에 흥미를 두게 됐죠."
작가는 이 시기부터 현대화되고 있는 문화 속에서 미술인으로서 어떤 작품을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갖게 됐고,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심취하게 되면서 학과 선배들 및 대구 5개 대학 미술학도들과 함께 '독립작가 리그전' '대구현대미술제' '비욘드'와 같은 소그룹 미술활동을 했다. '미술은 새로움의 창출이다'는 전제아래 뭔가 자신만의 예술의 찾고 싶었던 김결수에게 1988년 졸업 후 만든 대구 5개 대학 연합전은 미술인의 상호 네트워크 소통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어 1991년 대학원 입학 후 작가는 신인 아티스트로서 '삼천포 미술제'와 '남부국제현대미술제' 등에 참가하면서 대외적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작가로서 애송이 때를 살짝 벗어난 이 때, 그는 주로 비구상 계열의 '태초의 형상'을 주제로 선(線)과 복합적 재료를 이용한 추상적 조형언어에 몰두하게 됐다.
김결수는 비단 개인적인 작품 활동뿐 아니라 지역 간 작품 네트워크와 인적관계 형성에도 많은 열성을 보여, 현재 대구를 제외한 타 지역 작가들과의 교류가 가장 광범위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적 자산은 그가 대구에서 기획하는 각종 전시의 감독활동이나 기타 전시회에 타 지역 작가를 초청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03년부터는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대구에 외부 작가들을 많이 불러들임으로써 대구 미술계가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이 해 열린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전시 분야를 기획하면서 그는 당시 대구 미술환경에선 생소했던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작품을 대거 소개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도 설치미술에 접근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회화를 전공한 자로서 설치미술로의 접근이 쉽지는 않았죠. 설치미술은 전시환경에 민감하고 복합적 요소가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물성을 표현하느냐가 관건이었죠."
바로 이때부터 김결수가 고민의 결과로 얻어낸 개념이자 이후에 줄곧 그의 평면과 반입체 평면 및 설치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는 열쇠어가 '노동과 효과성'(Labor&Effectiveness)이다.
작가에 따르면 예술가의 길을 가면서 예술로 잘 먹고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변 예술가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작가도 사심 없이 주어진 예술의 길에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중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생활도구에 어느 날 그의 눈에 꽂혔다.
수 십 년 인간의 생활에 필요로 하다가 손때가 묻을 즈음 사라지거나 버려지는 생활 용품들 즉 가마솥부터 조각배 심지어 야구 사인볼까지 어느 것 하나 인간들의 지난한 노동시간을 대변하지 않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노동'의 개념이 도출되고 그것들을 이용한 김결수 식의 설치미술이 '효과성'이라는 측면에서 재구성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강릉 경포대 해변에 선보인 그의 설치 작품 'Fire Art Fest'는 6㎥의 대형작품으로 여기에 쓰인 재료 역시 인간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가마솥, 구들장, 볏짚, 철제, 목재 등으로 제작됐다.
한편 그의 대표적인 평면회화 작품에 눈을 돌려봐도 대형 캔버스에 지붕모양의 단순 도형을 마치 자기 복제하듯 연결하면서 그려나간다. 김결수에 따르면 집은 우주의 중심이자 한 인간의 생로병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이 또한 태어나서 자라면서 노동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완결판이 집을 중심으로 사건화되고 있음을 간파한 작가가 '노동과 효과성'을 평면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김결수의 작품은 대개 큰 게 많다. 스스로 욕심이 많아서라지만 전시공간에 맞게 배치하려면 작품 크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작가가 추구하는 경향성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소품보다는 대작 위주로 한 제작이 많다.
그는 2018년부터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안에 'MOON101'이라는 갤러리도 열었다. 상업화랑의 역할에 아쉬운 점이 있어서 그가 직접 갤러리를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작품을 공유하고 작가들과 소통을 하고 싶어서란다.
작가는 올 4월 오모크 갤러리를 출발로 8월 광주 우제길미술관, 10월 러시아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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