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한국으로 유학 와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인도 현지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인도인 구루 반디 씨가 있다. 그에게 어느 날 인도에서 경관과 기후가 가장 좋은 관광지가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주저 없이 "그야 카슈미르주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덧붙였다. "하지만 거기에 가려면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겨 두고 가야 해요." 농담은 됐고, 정확한 여행 정보를 달라고 했다. 자세를 고쳐 앉은 반디 씨가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도 최북단 고원지대에 위치한 카슈미르는 면적이 22만㎢로, 한반도 크기에 달합니다. 인도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답고 기후가 쾌적한 곳이죠. 히말라야 산맥 고지대라 인구밀도는 낮아도 목축지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카슈미르 양모는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뉴질랜드가 양모로 유명하긴 하지만, 카슈미르는 나라의 한 주(州)가 뉴질랜드 남북 섬을 합한 만큼 넓은 데다 목축 조건이 훨씬 좋죠."
그런 멋진 곳에 관광을 가려면 왜 유언을 남기고 가야 한다는 걸까. 반디 씨는 외지인을 겨냥한 테러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힌두교 성지순례객을 대상으로 한 무장세력의 테러 시도가 잇따르면서, 한국은 카슈미르를 철수 권고 지역으로 지정했고 독일, 영국 등도 이 지역을 방문하려는 자국민에게 여행주의보를 내렸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슈미르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계가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인도보다 파키스탄과 유대 관계가 더 가까운 이들은 인도가 대영제국 식민지에서 독립할 때 파키스탄 편입 또는 독립을 원했다. 하지만 당시 힌두교도였던 지도자가 인도 편입을 결정했고, 이에 이슬람계 반군이 인도 정부의 강압적 병합 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고자 외지인을 표적으로 삼아 이 같은 테러를 벌여오고 있다는 것. 더욱이 카슈미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최근까지 공중전, 폭격 등 전면전에 가까운 위기 상황을 이어가는 상태다.
이와 함께 반디 씨는 외국인들이 기피하는 인도의 또 다른 지역을 귀띔했다. 바로 곡창지대인 비하르주다. 이곳은 외국 단체 관광객들보다 소수의 관광객이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당한 15세 소녀를 마을 사람들이 오히려 무고죄로 몰아 삭발하게 한 뒤 온 마을을 돌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농산물 집산지인 이 지역이 어쩌다 그런 악명을 쓰게 됐을까. 반디 씨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1950년 인도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했죠. 선거를 통해서만 집권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이 선거에서 다수표를 차지하는 세력은 힌두교도들입니다. 이 때문에 권력을 얻고자 표를 몰아주며 소위 정치세력화한 '힌두스바'들이 생겨났죠. 힌두스바의 도움으로 당선된 지방행정가는 경찰 등과 결탁해 힘없는 주민의 재산을 뺏고 외지인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범죄도 묵인하는 '정치 마피아'로 몰락해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걸 모르고 그곳에서 여행하다 나쁜 일을 당해도, 도움을 청하는 것이 헛일일 수밖에요. 인도의 엄격한 신분제도가 이어져온 3천여 년간 최상계급인 브라만과 관료, 경찰 등이 야합해 하층 계급을 갈취하곤 했다죠. 이러한 계급사회 타파를 위해 도입된 민주적 정치제도가 하필이면 새로운 형태의 민중 갈취로 탈바꿈해 버린 겁니다. 인도 비하르주가 세계적으로 타락한 민주정치의 사례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비하르는 그럼에도 불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부처가 무상정각(無上正覺·더 이상이 없는 바른 깨달음, 깨달음의 경지)을 얻고 다르마(법)를 펼친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다. 불교 4대 성지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히는 이곳이 인간의 욕심과 갈등으로 뒤덮여버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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