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진세(塵世)를 버렸어라

입력 2020-03-11 11:36:04 수정 2020-03-11 19:00:03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수도자나 사제가 되려는 첫 출발점은 세속적 욕망들을 끊는 큰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이 결심을 옳게 하지 않고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에서 많은 곤란을 겪게 된다. 다른 어떤 숨은 의도를 지니고 있으면 자신도 괴롭고 주변 사람들도 괴롭히는 일들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로 들어서기 전에 속세에 대한 마음을 싹 비워야 하고 덜 비워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내는 대로 비워야 한다.

이 길에 들어설 것인지 다소 긴 기간 고심하면서 모든 욕망들을 비우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 후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어리고 미숙했던 그 당시 그렇게 마음먹는 것으로 모든 세속적 욕망들이 정리될 수 있는 것이고 정리된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미숙했지만 마음만은 생기 있고 순수한 새내기로 첫 학기를 지내고 방학을 맞이할 시기에 이르렀다. 이 길에 이미 10년 전에 들어선 최고참부터 새내기였던 우리에 이르기까지 모두는 방학에 앞서 9일 기도를 하면서 날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졌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그런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맞이한 방학은 참으로 달콤할 것 같았다. 학기 중에 아침 6시 일어나서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꽉 짜인 규칙들을 어김없이 지켜내느라 몸과 마음은 언제나 긴장 상태였고 엄격히 제한된 외출 규정에 매여 바깥세상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던 삶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부터의 해방은 좋았지만 가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이 길에 들어서면서 떠난다고 여기는 어려운 결심을 했던 부모님 집이었다. 당시 그곳 말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방학 동안 기거할 수 없었다.

진세를 버리는 삶을 추구하든 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삶을 추구하든, 우리는 지구가 제공하는 삶의 조건에 따라 지구 표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살고자 하는 수많은 생명체들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생명체이고, 생명체들 중 일부를 희생시키며 날마다 먹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목숨이다.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등 이과를 좋아한 나는 공부란 모두 명백한 결론에 이르는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인간의 삶과 의식 세계를 다루는 문과는 달랐고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존재하시는가?'를 정확한 논리로 확실하게 알고 싶은데, 신학개론 강의는 '하느님은 존재하신다'로 시작했다. 마치 수학에서 공리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공부를 계속하기도 힘들었고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만두고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나은 곳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랜 기간 지속된 혼란과 고통 그리고 서서히 회복되어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자면 긴 시간과 지면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합하여 짧은 글로 '이 모든 것은 은유이고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을 위한 한 편의 시다'로 정리하고 싶다. 진세를 버린다는 것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은유로 알아듣고 해야 하는 것이고 이 세상을 위한다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 것 같다. 이것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여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애를 썼던 초년생 시절, 얼마 못 가서 완전히 번아웃 상태로 빠져들었다. 회복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이 걸렸던 그 엄청난 고통은 나에게 언제나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너는 지구 환경의 조건들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이웃을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지닌 생명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