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봄은 오는가

입력 2020-03-0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노자(老子)는 '대음희성'(大音希聲)이라고 했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너무도 위대한데 자연에서 멀어진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봄의 소리는 정녕 시구나 노랫말에나 나오는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인가. 그래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법도 한데, 올봄은 그 같은 치기(稚氣)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이 판국에 무슨 봄 타령인가.

가족이 보름째 칩거 생활 중이다. 인근 마트에 물건 사러 가는 것은 물론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것조차 두렵다.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못내 께끄름하다. 기침 소리라도 나면 호흡을 멈추고 저만치 비켜서야 한다. 친한 벗들과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없고, 그럴 만한 대폿집도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유학생인 아들은 방학을 맞아 일찌감치 북경(北京)을 잘 벗어났다고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개학을 하더라도 중국에서 대구 출신을 받아줄지 걱정이 태산이다. 아예 재택근무에 돌입한 채 삼시 세 끼 음식해대느라 손에 물이 마를 겨를이 없는 아내의 남은 관심사는 오로지 마스크 구입이다. 비록 오후 한나절이지만, 마감을 위해 신문사를 오가며 콧바람을 쐬는 내가 어쩌면 집안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이다. 드나들 때마다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지만 불안감은 숙지지 않는다.

출퇴근길 바깥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인적이 드문 썰렁한 거리와 문 닫힌 가게들을 보면 가슴이 황량해진다. 창궐하는 전염병 바이러스와 나날이 늘어나는 확진자들, 방역 현장에서 감염이나 과로로 쓰러지는 의료진과 공무원들, 혹세무민으로 감염 확산을 부추겨온 종교집단, 시종일관 뒷북 정책과 영혼 없는 언행도 모자라 시민들 가슴에 생채기나 덧내는 집권 세력과 그 주변 무리들….

이 황망한 시절에 산기슭마다 피어나는 화사한 꽃망울인들 눈에 들어오겠는가. 육십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봄이다. 오늘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대구 시민들은 아직도 겨울 속에 갇혀 있다. 이 어두운 터널에도 출구가 있을까. 마스크를 벗을 날이 올까. 다시 봄비가 내리고 서러운 풀빛이 짙어올 것이다. 오는 봄조차 빼앗겼는데 가는 봄은 또 얼마나 느꺼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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