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종교인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발전사를 보면 각 종교가 표방하는 자비, 사랑, 용서와 같은 보편적 인류애의 교리를 제쳐두고라도 한 가지 유사한 점이 더 있는데, 다름 아닌 각 종교 창시자 사후 보편종교로 발전하는 초기과정에서 필연적인 종파적 분열이 야기됐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경우, 부처의 깨달음부터 입멸까지의 기간을 합친 약 200여 년간 이어진 '근본불교' 시기는 비교적 교단의 화합과 교리가 잘 지켜졌었다. 그러나 근본불교 이후 '원시불교'로 일컫는 시기에 접어들면 교단은 크게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돼 격렬한 교리논쟁에 휘말린다. 이는 다시 상좌부와 대중부로 대표되는 '부파불교' 시기를 거치면서 상좌부는 소승불교, 대중부는 대승불교로 발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슬람교의 경우, 마호메드 사후 후계자 문제에 휩싸이면서 갈라졌고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돼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경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당시 예루살렘의 시대상황은 유대교의 중심지로 율법만을 중시한 서슬 퍼런 유대교와 이방인들에게 자유로운 복음을 전파한 바오로와의 사이에서 교회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해야만 했다. 특히 바오로의 선교대상은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들이었고 야고보의 교회는 신앙에는 입문했으나 믿음과 행함의 괴리를 드러내고 있던 신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 시기에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영적으로 변화된 야고보는 AD 1세기 초 갓 부화한 격동기의 예수살렘 교회를 이끄는 수장이 되면서 교회의 분쟁과 혼란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와중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야고보서)는 호소를 외친다. 이는 단순히 믿음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믿음의 진정성과 성실성은 삶 속에서 그 열매인 행함을 빚어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야고보의 이 웅변은 당시 바오로가 주장했던 '하느님의 의는 행위나 공로가 아닌 믿음이다'는 소위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오해함으로써 행함을 소홀히 여기거나 윤리를 무시하는 거짓 믿음으로 흐르는 폐단을 일소하기 위함이었다. '이신칭의'는 1517년 당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대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따른 종교개혁 운동의 주요 슬로건이 됐던 교리이기도 하다. 믿음과 행함을 동일가치로 역설했던 야고보는 AD 62년 유대교 이단자들이 던진 돌을 맞고 순교한다.
사실 신앙이란 문제는 사유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기준 삼아 자기 생애를 조율하기보다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기준 삼아 성경의 메시지를 재단하고 조율하려고 할 때 '이단'은 발생한다.
야고보란 이름이 지닌 속뜻은 '발꿈치를 잡다'이다. 발꿈치는 똑바로 혹은 제대로 직립보행 할 수 있게 하는 신체의 일부로, 이 발꿈치가 잘못되면 걸음걸이는 비틀거릴 수밖에 없으니 누군가가 잘 걸을 수 있도록 교정 또는 잡아줘야 한다.
'행함' 없는 믿음은 공허하고, '믿음' 없는 행함은 맹목적일 수 있다. '믿음'과 '행함'의 두 바퀴가 같이 돌 때 수레는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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