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강주리-살아남기'

입력 2020-02-03 13:28:14 수정 2020-02-03 13:28:17

강주리 작
강주리 작 '살아남기-To survive'

4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에 언제나 이색적이고 특출한 설치작품을 유치해 온 대구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의 올해의 첫 공모 선정 작품은 '강주리-살아남기 To Survive'이다.

이 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생태적 변화를 지켜보며 그 양상을 수집한 행위의 흔적이며 어쩌면 낯설고 기이하게 보여 살펴보지 않았던 생태 순환계의 변이와 진화의 실상을 펜 드로잉 방식으로 포착하고 이를 다시 입체적인 증식의 형태로 묘사한 설계 작품이다.

"예술의 힘은 삶과 현실의 변화가 반영되고 서로 소통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 '변형 전'과 '변형 후'의 다양한 모습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 강주리가 이 설치 작품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대상들은 모두 직접 리서치를 통해 지구상에 실재하는 광물과 동식물들을 합쳐놓은 것들이다. 동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며 자라는 종유석,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된 먼지 입자, 혹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유성체를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덩어리들은 생태계가 수많은 '변이와 진화'의 대상과 상황들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한껏 움츠리고 있는 형상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각각의 대상들을 종이에 펜 드로잉을 한 후 수백 장을 복사하고 오리고 붙여서 한데 모아 또 다른 형태의 설치작품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각 대상들의 변화의 흔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주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상태를 예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변화의 범주에는 인간도 포함되며 이를 통해 현실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예견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인식해보자는 것이다.

"미국의 한적한 해변마을에서 레지던시를 할 때 해안에 떠밀려와 죽은 고래의 사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거의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이방인인 저에게 고래의 사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에서 작가는 서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생태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관심을 가졌고, 인간과 자연 사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해석하기 위해 드로잉을 통해 혼합적인 설치작품을 작업했다.

강주리의 설치작업 '살아남기'는 어찌 보면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인 아름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증식과 집합이라는 이항적 조합을 통해 진화하는 생명체는 결코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를 거치고 있는 생명체는 끔찍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통해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생명들의 생존 욕구 그 자체가 아름다운 본능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생태계 변화의 현실을 내면적 인식으로 해석하려는 강주리의 이번 설치 작품은 변화하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 속에서 예술의 유효성을 건지려는 작가의 질문임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전시는 3월 22일(일)까지. 문의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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