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남도의 섬, 보길도
'13년 은거'윤선도의 하루는 이렇게나 여류로웠으리라
"노는 여행이 아니라 공부하는 여행입니다."
'노는 여행'에서 '배우는 여행'으로 바꾸자며 2001년 대구답사마당을 설립한 이승호 원장이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으며 느낀 현장의 분위기와, 깊이 있는 역사해설을 곁들이는 "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을 격주로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남도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 보길도. 겨울이라 춥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겠지만 남도의 섬들은 겨울이야말로 걷기에 제격이다. 보길도는 우리나라 섬 중 7번째로 큰 섬으로 행정구역상 완도군에 속해있다. 완도군에는 보길도, 청산도, 노화도, 고금도, 신지도, 약산도 등 60여 개의 유인도와 14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섬에 가더라도 잔잔한 바다와 점점이 박힌 섬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해남군 북펑면 남창리에서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사이에 완도대교가 놓여 차량으로 갈 수 있다. 북서쪽의 해남반도가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인근 바다는 난류가 흐르므로 이 섬의 기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하다. 그러한 환경으로 전복을 비롯하여 다시마, 김, 톳 등 해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이번 답사여행은 청산도와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보길도로 안내한다.

◆고산 윤선도의 혼이 머무르는 보길도(甫吉島)와 원림(園林)
고산 윤선도의 혼이 숨쉬는 곳인 보길도.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아름다운 노래가사를 탄생시킨 곳이 보길도이며 그 중심에 세연정(洗然亭)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중기 문신이며, 시인이였던 윤선도가 보길도를 만난 것은 1637년 그의 나이 51세 때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 태종이 직접 전쟁에 나섰고, 막강한 청나라 군대는 순식간에 한양 근처까지 쳐들어 왔다. 전남 해남 집에 있던 고산은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왕을 돕기 위해 집안 사람들과 노복 수백 명을 태우고 강화도로 진군했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남한산성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가 한강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의 예를 바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고산 윤선도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항해 중 태풍을 만나 보길도에 떠내려 오게 되고 이곳의 금빛 모래, 울창한 원시림 등 수려한 자연에 매료돼 그는 여기에 터를 잡았다. 그 섬이 바로 보길도이다. 그때 그는 보길도에 감격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늘이 나를 기다려 이곳에 멈추게 한 것이다"(윤위 보길도지 中).
고산 윤선도는 그렇게 보길도에서 51세부터 13년간 은거하며 자연과 친구가 되어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생활했다.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친구라 부르며 자연과 함께 보냈다. 보길도의 자연은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인 듯하다. 그가 지은 아름다운 시와 그가 보길도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가 지은 건축물도 20여곳이 넘는다. 고산 윤선도가 책을 읽고 뱃놀이 하며 자연을 벗삼았던 세연정은 창덕궁 부용정, 담양 소쇄원, 경북 영양 서석지와 함께 우리나라 원림 중 가장 토속적인 분위기를 지닌 조선시대 별서정원이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세연정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윤선도의 또 다른 벗들이 있다. 물 위로 솟아 올라온 바위들에는 제각각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일곱 개의 벗들이라는 세연칠암, 뛸 듯하면서 뛰지 못하고 있다는 이름의 바위인 혹약(惑躍)암,부용동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을 판석으로 막아 만든 인공연못인 세연지와 회수담에 물을 가두고 굴뚝으로 사용한 판석보가 노송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산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옥소대가 나온다. 옥소대에서 무희가 춤을 추면 세연정에 그림자가 비춘다고 한다. 세연정을 조금 더 들어가면 산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둘러친 부용동이 있다. 여기에는 고산 윤선도가 시를 짓거나 책을 읽었던 주거공간인 낙서재를 최근 복원해 놓았다. 낙서재에서 보이는 건너편 산 중턱 바위 위에 조그마한 집이 동천석실이다. 차를 마시면서 쉬었던 휴식공간이다. 쉽지 않은 산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된다. 석담, 석문, 석축, 석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천석실에서는 부용동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예송리해변의 사랑 노래
전국적으로 이름난 보길도의 해변은 단연 예송리해수욕장이다. 검은 바둑돌이 가득한 예송리해변은 세연정에서 청별리항, 중리해변을 지나서 약 15분 거리, 격자봉(해발 433m) 뒷편에 있다.
바닷가는 모래 대신 바둑돌 크기의 검은 돌이 끝없이 깔려있다. 거제도 몽돌해변의 돌보다는 작고, 백령도 콩돌해변 돌보다는 크다.
검은 갯돌은 억만 겁의 세월 속에서 바위가 닳고 닳아 자연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돌이 검고 조그마한 갯돌들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겨울밤 갯돌이 들려주는 사랑의 하모니를 연인과 함께 들으면 새로운 감성이 피어난다.
활처럼 휘어진 1.4km의 예송리해변은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상록수 방풍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감탕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의 상록수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어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예작도, 닭섬, 기섬과 저멀리 추자도가 보이는 이곳은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글씐바위, 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
보길도 서쪽 끝에는 망끝전망대가 있고 동쪽 끝에는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다.
선창마을을 지나면 망끝전망대가 나온다. 낙조로 유명한 전망지다. 모래섬, 상도, 미역섬, 옥매도 등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왼쪽 길을 따라 보면 뾰족산이라고도 불리는 '보죽산'이 보인다.
섬의 동쪽 끝으로 가면 우암 송시열이 글씨를 써놓았다는 '글씐바위'가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조선 숙종에게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83세의 나이로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이곳 보길도 동쪽 백도리에 잠시 머물며 암벽에 그의 신세를 한탄하는 오언절구 시를 남겼다. 이것을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라고 한다.

tip:
*가는 길: 대구→중부내륙고속도→남해고속도→해남→땅끝(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
*보길도 가는 길은 해남 땅끝(노화도 산양항 도착) 혹은 완도 화흥포(노화도 동천항 도착)에서 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승선 소요시간은 땅끝에서는 30분 정도, 화흥포에서는 40분 정도 소요된다.
*여객선은 보길도 청별리항에 바로 가지 않고 노화도에 도착한 후 개인 차량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해야만 보길도에 갈 수 있다. 개인 차량을 가지고 가면 편한다.
*요금(성인 기준 편도)은 땅끝에서 출발 시 배삯 6천500원, 승용차 승선비 1만8천원이다.
글·사진=답사마당 이승호 원장(leesh06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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