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시리즈의 탐정 셜록 홈즈는 인간적 매력이라고는 손톱 끝만치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오만하고, 자아도취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쉽게 말해서 그는 일반인들이 중요시하는 인간적 품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과학과 이성만을 신뢰하며,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초자연적 세계란 존재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바스커빌 가의 개'(1901)는 셜록 홈즈의 이런 기질을 충분히 활용한 소설이다. 마견(魔犬)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바스커빌 가문의 주인 찰스 바스커빌 경이 어느 날 시체로 발견되고, 전설 속 '개'의 저주, 즉 초자연적 세계가 범죄의 주범으로 제시된다.
이 사건이 합리주의자 홈즈의 전투 의지를 들쑤신 것은 당연한 일. 홈즈는 치밀한 추론과 조사를 통해서 초자연적 존재가 일으킨 듯한 이 사건이 실제로는 돈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기획이었음을 밝혀낸다. 마침내 범죄가 해결되어 세계는 평온을 되찾고, 홈즈는 합리적 세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
초자연적 세계의 허구성을 과학과 이성으로 폭로해낸 셜록 홈즈의 모험담, '바스커빌 가의 개'는 1941년 조선에서 '바스커빌의 괴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된다. 원작이 발표된 지 40년이나 지난 때였다. 이 무렵 조선사회는 '백백교 사건'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었다.

'백백교 사건'은 사이비 종교 교주 전용해가 300명이 넘는 신도를 무차별적으로 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1937년 조사가 시작되고, 4년 후인 1940년 법원이 12명 모두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러나 법적 정리와는 별개로 이 사건이 조선 사회에 남긴 상처는 컸다. 미신에 빠진 수 백 명이 살육당한 야만적 사건은 조선사회의 근대성을 단숨에 허물어뜨릴 만한 것이었다. 미신이 쉽게 파고들 만큼 사회,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조선 사회에 대한 한탄과 자조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조선인에게 심어준 자부심을 백백교 사건이 한순간에 없애버렸다는 절망적인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교주 전용해의 머리를 '범죄형 두뇌 표본'으로서 포르말린에 보관한다는 일제의 엽기적 결정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사회의 야만성은 극화됐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조선사회를 덮쳤다.
'바스커빌 가의 개'가 조선어로 번역, 출판된 것은 이 시기였다. 몇 글자 간단한 주문만으로 천국이 문이 열리는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가르쳐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때였다. '바스커빌 가의 개'의 조선어 번역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서양 소설 한 권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작은 빛이라도 모아서 희망을 만들고자 했던 조선 사회의 열망이 이 책 한권에는 들어있었던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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