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집이 너무 머네-작자 미상

입력 2019-08-01 10:08:14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산 앵두꽃이 唐棣之華(당체지화)

바람에 살랑, 살랑대고 있구나 偏其反而(편기반이)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랴만 豈不爾思(기불이사)

집이 멀어도 너무 머네 室是遠而(실시원이)

산 앵두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살랑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님(=그대)'의 얼굴이 난데없이 울컥, 떠오른다. 아마도 화자는 산 앵두나무 꽃 아래서 사랑하는 님과 입술을 맞대고 마음을 쏙닥거렸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그 님을 향해 들입다 내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님이 계신 곳이 멀어도 정말 너무 머네, 아아!

중국 최초의 시가선집인 '시경(詩經)'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고대 시가의 하나다.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에 인용되어 있는데, 이 시에 대해 공자는 다음과 같이 평한 바가 있다.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집이 멀다고 하겠느냐(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인(仁)이 멀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듯이, 님에 대한 생각이 정말 간절하기만 하다면 거리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는 고개/ 산진이(산에서 자란 매)이 수진이(집에서 길들인 매) 해동청(海東靑: 송골매) 보라매(사냥에 쓰는 매)라도 다 쉬여 넘는 고봉(高峰) 장성령 고개/ 그 넘어 님이 왔다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으리라(작자미상의 사설시조)". "내 그대를 사랑하면 그댈 패 죽이게 되고, 아니면 그대가 나를 쳐 죽이게 된다 해도/ 그래도 어쩔 수 없네, 이 기겁할 만유인력!(이종문, 引力)" 보다시피 눈에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사랑인데, 님에 대한 마음이 펄펄 끓는다면 어찌 집이 멀겠는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서 정구지 지짐을 굽고 있어요.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뜨거운 철판 위에 드러누워 있는 보름달 같은 지짐 넙디기 위에 갑자기 선생님의 얼굴이 겹치는 거 있죠. 마음 같아서는 이 지짐 한 넙디기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길이 너무 머니 어쩌면 좋아요" 우와! 그렇더냐! 네가 굽는 보름달 속에 나의 얼굴이 떠올랐다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구나. 그러나 우스개 삼아서 사족(蛇足)을 단다면, 길이 너무 멀단 말은 하지 말아라. 마음의 간절함이 부족한 게지. 얼마 전에 함께 읽었던 공자님 말씀 벌써 잊었구나.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집이 멀다고 하겠느냐".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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