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잘 모른 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진 창조경제
현 정부의 혁신성장도 존재감 부족
이대로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판
'아무도 모르는 3가지'가 있었다. 2013년 3월경부터 시중에 돌던 우스갯소리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생각,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창조경제는 시대의 화두였다.
그때 막 출범했던 정부는 이것으로 경제를 살리고 나라도 발전시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막상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가 잘 보이지 않아 그걸 빗댄 유머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잘될 거라 믿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창조경제는 이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대세로 떠올라 있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창조경제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언론도 덩달아 창조경제만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며 그 끝에는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선 대한민국과 행복한 우리가 있을 거라 전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을 부정하면 안 되는 것처럼 창조경제가 뭔지 잘 안 보인다고 해서 그 권능까지 의심해선 안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정부가 처음 창조경제를 들고나왔을 때부터 의문은 들었다. 이미 알려진 '문화산업', 같은 의미로 쓰이는 영국의 '창조산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전전(前前) 정부의 '창의한국', 즉 '창의산업'과는 또 무엇이 다른지 의아했다. 다만 취임 직후 있은 3·1절 기념사에서 당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국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라고 하니 그저 좋은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갔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만들어지는 광역단체의 장들은 '대통령 먼저 모시기'와 '대통령 눈에 들기'에 온 힘을 다했다. 모든 빛은 대통령을 향했고 거기서 창조경제를 짊어지고 갈 청년과 기업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창조적이지 않기로 제일가는 대기업들을 순서대로 불러 하나씩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맡겼다. 삼성이 끌어주니, SK그룹이 밀어주니 여기 있는 청년과 기업들이 얼마나 잘되겠냐며 박수 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수시로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될 것을 강조했고 정치권을 향해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창조경제도 성공하고 나라의 미래도 있을 것이라 했다. 창조경제를 가장 반(反)창조적인 말로 독려한 셈이다. 압권은 2016년 어린이날, 청와대에서 있은 질문과 대답이었다. "발명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어린이에게 대통령은 전국 17곳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거기에 가면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고 수출까지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창조경제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그게 뭔지 모른 채 껍데기만 남기고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달 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 '이제 와서 벤처 붐이라니?' 할 거면 진즉 했어야 했다. 내용도 규제완화, 금융지원의 또 다른 버전인 데다 6개에서 20개까지 늘리겠다는 '유니콘 기업'은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야말로 미국식 기준일 뿐이다.
출범 당시 현 정부는 새로운 경제 전략으로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웠다. 하지만 처음 1년은 비트코인 논쟁에 끌려 다녔고 그 후로는 기억나는 게 없다. 내놓겠다던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모델은 소식이 없고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존재감이 없다.
지금까지 '클라우스 슈밥'의 명성을 드높이고 기업들의 제안서 내용을 '창조경제 구현'에서 '4차 산업혁명 선도'로 바꿔 놓은 것 말고 또 무슨 성과를 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을 목 놓아 부르짖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구글의 검색 횟수 기준으로 보면 2위인 미국의 100배에 달한다.
혁신성장을 하려거든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소리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대로면 문재인의 혁신성장 또한 아무도 모르는 한 가지가 될 판이다. 그렇게 되면 그 부담은 다시 국민이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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