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서 곰뼈가 나온 이유는?

입력 2019-04-02 18:09:59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월성 해자(垓子) 출토 유물 공개

경주 월성 해자에서 나온 방패. 왼쪽은 손잡이가 없고 오른쪽은 손잡이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월성 해자에서 나온 방패. 왼쪽은 손잡이가 없고 오른쪽은 손잡이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해자에서 통일신라 이전 것으로 추정되는 곰 뼈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2014년부터 월성을 발굴 조사 중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북쪽을 휘감고 있는 방어시설인 해자에서 발굴한 유물을 2일 공개했다.

동물유체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한반도 남부에선 서식하지 않는 곰의 뼈다. 지난 4년여간 15점(3개체)이 이곳에서 나왔다. 앞팔뼈와 뒷꿈치뼈가 주로 출토됐고, 아래턱뼈에선 칼로 해체한 흔적이 나왔다.

'삼국사기'엔 군대 지휘관의 깃대에 다는 장식인 제감화(弟監花)나 군사감화(軍師監花)를 곰의 뺨가죽이나 가슴가죽으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연구소 측은 신라인들이 죽은 곰을 가져와 해체한 뒤 가죽으로 특정한 물건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동물유체의 30%를 차지하는 멧돼지뼈도 주목할 만하다. 멧돼지 아래턱뼈를 조사한 결과 생후 6개월 안팎이 36%로 가장 많았다. 어린 돼지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어린 맷돼지를 선호했거나 사육했다는 증거다. 연구소 측은 "5세기부터 신라에서는 안정적으로 돼지를 사육해 공급했고 어린 개체를 식용(食用) 혹은 의례용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의미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1천6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방패 2점과 목재 모형 배도 의미가 큰 유물이다.

방패는 제작시기가 340년부터 410년대 사이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 방패가 경산 임당동에서 나온 적이 있으나, 월성 유물은 전체 형태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더 온전한 형태를 갖췄다. 이 가운데 1점엔 손잡이가 달렸는데, 손잡이가 있는 고대 방패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겉면엔 날카로운 도구로 동심원과 띠 같은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고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경주 월성 해자에서 나온 목재 모형 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월성 해자에서 나온 목재 모형 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길이 약 40㎝의 목재 모형 배는 국내에서 확인된 동종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의례용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배처럼 선수와 선미를 정교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재질은 약 5년생 잣나무류, 제작 시기는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반 사이다. 일본에선 지금까지 500여점의 모형 배가 나왔고 관련 연구도 활발한데, 월성에서 나온 모형 배는 일본의 시즈오카현 야마노하나 유적에서 출토한 5세기 유물과 선미의 표현방식 등이 유사하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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