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고무줄놀이를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하긴1895년 '스튜어트 컬린'이 쓴 '한국의 놀이'라는 책에 한국의 '줄넘기'와 '줄 뛰어 넘기'가 소개 되어 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일본, 인도, 동남아 그리고 중국 연변에 가도 여자애들이 이런 놀이를 한다. 동남아시아인의 같은 집단 무의식도 있으니 놀이도 공통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는 고무줄놀이가 조선시대는 칡넝쿨이나 새끼줄을 이용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1919년 서울에 대륙고무공장이 생겨 고무신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고무줄도 생산하게 되었으니 고무줄놀이도 그 무렵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다.
아침 조회 때마다 운동장에는 쫓고 쫓기는 무리가 있고 울고 웃는 애들이 있었다. 여학생들의 고무줄놀이용 고무줄을 잘라 도망가는 개구쟁이 남자애들과 또 이를 잡으러 다니는 '선도' 혹은 '지도당번'이 있었고 고무줄 잘린 여자애들은 울고 고무줄 잘라 도망가는 남자애들은 웃는다. 일제 강점기부터 남자애들은 구슬치기, 깡통 차기, 말타기, 소타기를 주로 하고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를 많이 하였다. 남자애들은 고무줄이 아무 필요도 없으면서 잘랐다.
고대 스파르타인들은 20세 되면 활과 검, 창과 방패를 갖고 반나체로 산야에 던져져 혼자 7일 살아남아야 했다. 이 시기에 야생 동물을 사냥해서 먹고 살거나 아니면 최 천민 계급인 헬롯들의 음식을 훔쳐 먹고 살아야 했다. 기숙사 돌아가기 7일 전 마지막 임무는 헬롯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들고 돌아가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 풍습이 있었다. 한국의 헬롯은 여자 애들이요, 고무줄은 그들의 머리통이었던 것 같아 쓴 웃음이 난다.
고무줄놀이는 한 줄, 두 줄 또는 세 줄로 서서 했는데 주로 네 명이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진편이 고무줄을 잡고 이긴 편이 정해진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한다. 줄이 처음에는 발목높이에서 종아리로 올라가 나중에는 머리까지 올라가고 최고로 머리 위 한 뼘까지 간다. 이 높이에서 다리가 닿지 않는 애들은 물구나무서서 발로 고무줄을 잡아 내린다. 대구에서 주로 부른 고무줄놀이의 노래는 일제 강점기는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이 부른 '공화국 찬가'를 일본에서 편곡한 '봉축가'를 많이 불렀다.
"금빛으로 빛나는 일본/ 영광의 빛을 온몸에 받아서…. 운운, 광복이 되자 해방가와 독립군가 등을 많이 불렀다. 한국전 이후에는 반공 노래, 동요가 유행하다가 T.V가 등장하고부터는 광고 노래, 만화 주제가들이 많이 불렀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꼬마야 꼬마야 인사를 하여라/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대구뿐만 아니라 딴 지방 고무줄 놀이에서도 최고로 많이 불리던 노래다. 꼬마는 누구일까? "곰돌아 곰돌아 뒤를 돌아라/곰돌아 곰돌아 땅을 짚어라/곰돌아 곰돌아 한 발을 들어라/곰돌아 곰돌아 만세를 불러라/곰돌아 곰돌아 인사를 하여라/곰돌아 곰돌아 업고 돌아 곰돌아 괜찮네/곰돌아 곰돌아 잘 가거라."
이는 일본 고무줄놀이 노래다. 곰돌이의 곰은 일본어로는 구마다, 꼬마의 어원이 짐작이 간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 한다/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고무줄 노래도 애창곡이었다. 뜻을 모르는 계집애들은 놀이하며 신나게 이 노래를 불렀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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