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로 개인적 신앙심 이외에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요지는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의 기독교인들을 당시 한창 발흥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의 대항 세력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황제 권력의 강화에 이용 가치가 높다고 봤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단 박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타고의 도나투스파 탄압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공인 후 황제는 하느님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 임명되며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나투스파는 교회 내에서의 이런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성스러운 것은 황제와 교회가 아니라 어떤 세속적 타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실한 믿음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새로 뽑힌 카르타고 주교 카에킬리아누스를 앞세워 이들을 무참히 박해했다.
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정교회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혁명 당시 교회는 4만6천457개, 수도원은 1천28개였으나 1939년에는 100개에서 1천 개 미만으로 격감했다. 이 과정에서 사제 80%가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
1941년 6월에 터진 독소전쟁으로 이런 탄압이 끝나고 스탈린은 정교회 지원으로 돌아선다. 그 이유는 국민의 꺾이지 않는 신앙심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37년 인구조사다. 여기서 국민의 57%가 여전히 신앙인이라고 대답했다. 스탈린은 대독(對獨) 저항을 위해서는 국민 총동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정교회가 해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가 운영하는 사이트 '려명'이 26일 "조선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사탄 무리들의 방해 책동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평화의 별이 걸음걸음 비춰주기를 기원하는 축복기도가 있었다"며 북한 내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가 진행됐음을 공개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내보이기 위한 제스처다. 정치적 목적에 종교를 이용하는 불순한 의도를 여기서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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