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고 하였다. 우리네 주택 배치에서 뒷간은 으레 집안 한쪽 구석에 있었다. 그 시절의 뒷간은 재래식이라서 냄새가 나고 벌레 같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멀리 있을수록 좋았다. 또한 소변을 보던 오줌독이 따로 있었다. 어릴 적에 곤하게 자다가 아버지가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것은 오줌을 누고 오라는 신호였다. 깜깜한 밖으로 나가면 무서웠다.
그러나 여인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방 한쪽 구석에 요강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간이변소 역할을 하던 것이 요강이다. 도기나 자기 또는 놋쇠로 만들어서 예쁘고 만지기에도 간편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치우는 게 요강이었고, 가끔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요강은 여인들에게 요긴한 물건이었다. 방안에서 뿐 아니라 가마로 여행할 때도 쓰였고, 신부의 혼숫감이나 의료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조그만 항아리 모양으로, 예쁜 뚜껑이 있었으며, 오동나무로 만들어서 옻칠을 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휴대용이나 서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쇠가죽으로 만들어서 기름을 먹인 것도 있었다.
옛날에는 신분에 따라서 재료에 차등이 있었다. 도기․자기․유기․목칠기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 있었으나 주로 놋쇠로 만들었다. 그리고 왕이나 왕비는 뒷간에 거동하지 않고, 침전의 방을 하나 치우고 매화틀에서 용변을 보았다. 매화틀은 굽이 없는 나막신 모습과 비슷하고, 도자기로 굽고 청화로 무늬를 놓아 장식하였다.
또한 혼례를 올리는 날 신방에 들여놓기도 하였다. 갓 혼례를 치른 신부는 '첫날밤에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문턱을 넘으면 소박을 맞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부는 방안에서 소변을 보아야 했다. 염치가 중했던 시절이라 그 소리가 크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터. 그래서 요강 안에 솜이나 쌀겨나 목화씨 같은 것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미리 물을 부어 두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그런가 하면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갈 때나 신행을 갈 때도 가마 안에 요강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이 같은 예스런 배려는 지금도 유효하다.
요즈음 '뒷간'이라고 하면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다들 화장실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손 씻는 곳이라고도 하고, 볼일 보는 곳이라고도 하며, 더블유시[w.c.]라고도 한다. 외국에서는 요강 비슷한 것을 '침실용 변기[chamber pot]' 라고 한다. 그리고 국가 원수가 외국에 나갈 때는 '이동식 화장실'이란 것을 가지고 다닌다. 그에 비하면 우리네 옛 여인들이 사용했던 요강이야 말로 예쁜 생활 용기라 하겠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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