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영혼 없는 아부꾼

입력 2018-11-27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지문 없는 인간'이란 말이 있다. 윗사람에게 손바닥을 워낙 비벼 지문이 없어진 '아부의 대가'를 일컫는 비아냥이다. 아부(阿附)는 남의 비위를 맞추려 알랑거린다는 뜻이다. '아부꾼이 지옥문에 이르면 악마가 문을 걸어 잠근다'는 서양 속담이나 '교언영색'(巧言令色) '구밀복검'(口蜜腹劍)도 아부·아첨을 경계하는 말이다.

반대로 아부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언론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참솔 펴냄)에서 "아부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전해왔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칭찬하면 당신은 나를 돕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우리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갈망과 칭찬받으려는 욕망은 본능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성공하려면 적절한 아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 '아부는 친구를, 진실은 적을 만든다' '아부는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통설이 옳음을 안다. 문제는 그 정도다. 리처드 스텐걸의 주장처럼 서로 도와주는 '호혜적 이타주의' 수준이라면 사회를 밝고 긍정적으로 만든다. 자신의 출세와 이익만을 목표로 한 '악의적인' 아부가 횡행하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망친다.

과거 정부 부처의 장(長)이었던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욕먹고 고발까지 당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동상 등도 2, 3년 전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에서 보듯, 2년 만에 정부 판단이 완전히 달라져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다.

2,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같은 공무원·직원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완전히 판단을 달리한다. 처음 논의될 때는 뭘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 '정의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세력에 대한 아부 심리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정으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이는 소수이고, 상당수는 어중이떠중이 아부꾼이다. '영혼 없는 출세주의자·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세상이다. '내 앞에서 아첨하는 자는 내 뒤에서 (정권이 바뀌면) 비방할 것이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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