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관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를 결의한 23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는 울산지법 김태규 판사의 주장은 법치를 수호해야 할 사법부가 스스로 법치를 무너뜨리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법관대표회의의 결정 방식대로라면 판사도, 재판도 필요 없다. 법률과 법관의 양심이 아니라 여론에 물어보고 결정하면 된다.
법치의 주요 기둥은 무죄추정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이다. 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사법농단' 사건 관련 판사들은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앞두고 있다. 그들의 혐의가 무엇인지 수사에서조차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법관대표회의의 결의는 이를 부정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끝나도 적용된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재판을 거쳐야 확정된다. '사법농단' 혐의도 마찬가지다. 재판을 해야 사법농단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 아닌가. '사법농단'에 관련됐다는 의심을 받는 판사들은 재판은커녕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탄핵 결의는 재판 없는 혐의 확정이다. 이는 인민재판만도 못하다. 인민재판은 '재판'의 시늉이라도 낸다.
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법치의 파괴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 관련 판사의 탄핵을 결의하면서 그들이 무슨 법의 어떤 조항을 어겼는지 적시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2조 제1항의 명백한 위반이다.
일각에서는 법관대표회의가 전체 법관의 뜻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대표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본질이란 탄핵을 재판이 아니라 표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판사들이 유죄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지 그 무모함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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