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천 E.World 대표이사
가을밤,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자주 가족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때였던 것 같다. "아빠! 친구집에서 낮에 놀았는데, 집이 새집이라 너무 좋아. 오래된 이 집에 계속 살아야 돼. 우리 이사가면 안될까?" 30년이 지나 남루해 보이고, 편의시설이 부족한 집을 트집 잡아 이사가자며 조른다.

"아빠도 새집에 살면 좋겠지만,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랑 사는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딸 아이에게는 동문서답일 듯 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조용히 삐진듯 들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집이 낡기는 낡았지"하고 혼잣말을 해본다.
일주일쯤 지나서 아이가 숨 넘어가는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빠. 어제 친구 아빠가 학원가는데 차를 태워줬어. 차가 향기도 나고 푹신해서 너무 좋더라. 우리 차 바꾸면 안될까?" 15년이 지난 차를 즐겁게 타기만 하던 아이가 다른 집 차와 비교하며 요청 아닌 요청을 해왔다.
"아빠는 차가 부럽지는 않은데. 좋은 차를 타는 것보다 누구랑 타는가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라고 새집 타령 때와 유사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그렇다고 어떻게 모두 쫓아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사람보다는 물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나만의 소심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산 대구살이 벌써 5년차다. '혹시 서울 말투를 쓰는 외지인이라 경계하는거 아닌가', '정 붙이고 살지 못하는거 아니야' 등 많은 사람들이 외지 생활을 하는 나를 걱정해 주고, 안부를 물어준다. 대구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사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마음을 나누면 진실되게 나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구 사람들 특유의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안부나 배려의 말들이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한 세련된 말들보다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위안을 주는 것 같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서울에서 만나는 지인들로부터 '대구에 몇 년 있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5년 되었다'고 답하면, "이제 대구 사람 다 되었네. 사투리도 섞어서 써도 되겠네"라며 반 대구사람 취급한다.
생각해 보면 5년 동안 대구 사람이 다 되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장년시절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닌 듯 하다. 딸에게 누구와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 대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너무나 소중하다. 이 가을 하늘 아래 대구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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